“지정감사는 상장사나 대기업 얘기 아닌가요.” 시리즈B를 마친 비상장 회사에서 이 말이 나오는 이유는 대개 어디선가 들은 자산 5천억이라는 숫자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상장 회사를 실제로 지정으로 보내는 조항은 그 숫자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금융감독원이 2026 사업연도 감사인 지정을 사전통지한 1,230개사 가운데 비상장사는 320개사였는데, 그중 주기적 지정은 31개사뿐이고 나머지 289개사가 직권지정이었습니다.
💡 한 줄 요약 — 감사인을 자유롭게 고를 수 있는 기간은 원칙적으로 사업연도 개시일부터 45일이고, 그 기간을 넘긴 회사는 그 자체로 지정 대상이 됩니다. 상장을 하기로 한 회사는 45일과 상관없이 시행령이 정한 지정 대상이 되고, 같은 문언이 K-IFRS 의무적용도 함께 켭니다. 그리고 지정 통지가 온 뒤에 회사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법령이 정한 몇 가지뿐인데, 그중 감사인군을 낮춰 달라는 하향 재지정은 스스로 지정을 요청한 회사·주기적 지정 회사·상장예정법인에만 열려 있습니다.
📋 목차
5천억에서 닫히는 문을 보고 안심합니다
비상장 회사를 겨냥한 것처럼 보이는 조항은 외부감사법 제11조제2항제2호입니다. 자산총액이 일정 금액 이상이면서,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합해 발행주식총수의 50% 이상을 소유하고, 그 대주주나 특수관계인이 대표이사인 회사. 창업자가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인 스타트업 지배구조와 문언만 보면 정확히 겹칩니다.
그런데 그 “일정 금액”을 받는 시행령 제15조제6항이 5천억원이라고 적습니다.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국내 회사이거나 사업보고서 제출대상법인이면 1천억원으로 내려가지만, 둘 다 아닌 대부분의 비상장 스타트업에게는 5천억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여기서 문이 닫힙니다. 이 조항이 말하는 주기적 지정은, 연속 6개 사업연도를 자유선임한 뒤 그다음 3개 사업연도에 지정을 받는 제도이고 — 우리 독자 대부분과 무관합니다.
문제는 이 안심이 조항 전체에 대한 안심으로 번진다는 점입니다. 지정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제11조제2항의 주기적 지정과, 제11조제1항의 직권·요청 지정입니다. 5천억에서 닫힌 것은 앞쪽 문 하나뿐입니다.
회계 사고가 없어도 기한을 넘기면 지정됩니다
제10조제1항은 회사가 매 사업연도 개시일부터 45일 이내에 그 사업연도의 감사인을 선임하도록 합니다. 12월 결산이면 2월 14일입니다. 상법 제542조의11이나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제16조에 따라 감사위원회를 설치해야 하는 회사라면 그보다 이른 사업연도 개시일 이전입니다.
이 기간을 넘기면 어떻게 되는가. 제11조제1항제2호가 “제10조에 따른 감사인의 선임기간 내에 감사인을 선임하지 아니한 회사”를 그대로 지정 대상으로 적습니다. 회계처리를 잘못해서도 아니고 감리에 걸려서도 아닙니다. 감사인을 고를 권리는 기한 안에만 존재합니다.
45일은 감사인을 구하는 기한이 아니라, 회사가 감사인을 고를 수 있는 권리의 존속기간입니다.
선임기한을 놓친 회사의 일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금융위원회 고시 「외부감사 및 회계 등에 관한 규정」 별표 2는 이런 회사의 지정대상 선정일을 사업연도가 시작된 후 6개월째 되는 달의 초일로 두고, 그해 사업연도의 감사인을 지정하게 합니다. 12월 결산법인이라면 6월 1일에 대상으로 잡히고, 7월 중순 사전통지를 거쳐 8월 중순 지정기준일에 감사인이 정해집니다.
첫 외부감사를 받는 해에는 숨 쉴 구멍이 하나 있습니다. 제10조제2항은 직전 사업연도에 회계감사를 받지 아니한 회사에 개시일부터 4개월을 줍니다. 직전 결산에서 외부감사 대상 기준을 넘긴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는 일이 실무에서 드물지 않은데, 그 첫해만큼은 2월 14일이 아니라 4월 말까지입니다. 다만 이 예외는 직전 사업연도에 감사를 받지 않은 해에만 열립니다. 한 번 감사를 받고 나면 그다음 해부터는 45일로 돌아옵니다.
놓치는 이유가 게으름만은 아닙니다. 감사인을 고르는 사람이 대표이사가 아니라는 점이 자주 빠집니다. 제10조제4항제2호는 주권상장법인·대형비상장주식회사·금융회사가 아닌 회사의 감사인을 “감사 또는 감사위원회가 선정”하도록 합니다. 감사인선임위원회 승인이 필요한 회사는 같은 항 제1호나목이 정하는데, 대형비상장주식회사의 문턱도 시행령 제4조가 5천억원(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사업보고서 제출대상은 1천억원)으로 잡고 있어 스타트업은 해당하지 않습니다. 즉 일반적인 비상장 스타트업이 감사인을 처음 고르거나 바꾸는 해에는 비상근 감사 한 사람의 선정이 선임기한 시계의 스위치인데, 그 자리가 등기만 되어 있는 회사가 적지 않습니다. 직전 사업연도 감사인을 그대로 다시 선임할 때는 따로 선정 절차가 필요 없고(같은 호 단서 가목), 자본금 10억원 미만이라 감사를 두지 않은 주식회사는 회사가 직접 고르면 된다는 것이 금융감독원 안내입니다.
한 가지 더. 지정으로 감사인을 선임하는 경우에는 제10조제7항제1호에 따라 제10조제1항 본문·제2항·제3항 본문·제4항이 전부 적용되지 않고, 제10조제8항이 사유 발생일부터 2개월 이내 선임을 요구합니다. 45일을 놓친 회사에게는 다른 시계가 걸리는 셈입니다. 지정 통지를 받은 뒤의 실제 계약 시한은 아래에서 보듯 2주로 더 짧습니다.
상장을 결심하면 지정은 선택이 아닙니다
상장 준비 기업이 “지정감사를 받는다”고 말할 때, 그 경로를 자발적 신청이라고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11조제1항제1호가 실제로 그런 통로를 열어 둡니다 — 감사(또는 감사위원회) 승인을 받아 제10조의 선임기간 내에 증권선물위원회에 지정을 요청한 회사. 여기서도 45일이 다시 나옵니다.
그런데 상장예정법인에는 이와 다른 근거가 따로 있습니다. 제11조제1항제12호의 위임을 받은 시행령 제14조제6항제1호가 “해당 사업연도 또는 다음 사업연도 중에 주권상장법인이 되려는 회사” 를 지정 대상으로 명시합니다(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 간 이전상장, 코넥스시장 상장, 기업인수목적회사는 제외). 절차는 회사가 상장 추진을 입증하는 서류와 감사(또는 감사위원회)의 지정요청서를 붙여 지정을 요청하는 데서 시작하지만, 이 요청에는 45일 기한이 걸려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코스닥 상장예비심사는 지정감사인의 감사보고서를 요구합니다(한국거래소 「코스닥 상장심사 이해와 실무」). 상장을 하기로 정한 회사에게 지정은 고를 수 있는 옵션이 아니라 상장 절차의 한 단계입니다.
이 문언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똑같은 문장이 시행령 제6조제1항제2호에도 쓰여 있습니다. 그쪽 조항은 K-IFRS 의무적용 대상을 정하는 자리입니다. 즉 “해당 사업연도 또는 다음 사업연도 중에 주권상장법인이 되려는 회사”라는 한 문장이 감사인 지정과 K-IFRS 전환을 동시에 켭니다. 상장 준비 회사가 흔히 겪는 “감사인이 갑자기 바뀌었는데 회계기준까지 바뀌었다”는 상황은 우연한 겹침이 아니라, 같은 문언을 공유하는 두 조항이 같은 사업연도를 가리켜서 생기는 일입니다. K-IFRS 전환의 소급 부담은 kifrs 전환 소급에서, 외부감사 대상 판정 자체는 외부감사 대상 상장예정에서 이미 다뤘습니다.
실무 일정도 이 축에서 갈립니다. 고시 별표 2는 상장예정법인의 지정대상 선정일을 회사가 지정을 요청한 날로 두고, 그날이 속한 사업연도의 감사인을 지정하게 합니다. 다만 요청일이 사업연도 종료 전 3개월 이내이면 다음 사업연도의 감사인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12월 결산법인이 당기 감사인을 지정받으려면 9월 말까지 요청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통지가 오면 남은 시간은 주 단위입니다
지정 절차의 시계는 시행령 제17조에 있습니다. 증권선물위원회는 지정기준일부터 4주 전까지 지정 예정 내용을 문서로 통지하고(제2항), 통지받은 회사와 회계법인은 2주 이내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으며(제3항), 지정기준일에 지정 내용이 본통지되고(제5항), 회사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지정기준일부터 2주 이내에 감사계약을 체결해야 합니다(제6항). 재지정을 요청하려면 본통지를 받은 날부터 1주 이내에 사유 증명 서류를 붙여 내야 하고(제8항), 그 요청에는 사전에 감사 또는 감사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합니다(법 제11조제5항).
여기에 조문을 읽을 때 걸리는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시행령 제17조 가운데 사전통지(제2항)와 본통지(제5항)는 “법 제11조제2항에 따라”라는 문구로 시작해, 문언상 주기적 지정의 절차로 쓰여 있습니다. 직권지정에도 같은 시계가 도는지가 조문만으로는 닫히지 않습니다. 이 자리를 닫는 것은 같은 고시 제15조제1항입니다. “금융감독원장은 법 제11조제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회사의 감사인을 지정하는 경우에 영 제17조제2항부터 제5항까지의 규정을 준수하여야 한다.” 4주 사전통지와 2주 의견 제출은 이 고시를 통해 직권지정에도 적용됩니다. 제6항(2주 내 감사계약)과 제8항(1주 내 재지정 요청)은 이 목록에 없지만, 두 항에는 처음부터 그런 한정이 없습니다. 제6항은 “회사는”으로 시작해 지정기준일부터 기간을 세고, 제8항은 법 제11조제4항 단서를 받는데 그 단서가 제1항과 제2항을 함께 받습니다. 두 시계 모두 직권지정에도 그대로 걸립니다.
재지정 사유는 열려 있지 않습니다. 시행령 제17조제7항이 네 가지로 한정합니다. 외국투자가가 출자조건에서 감사인을 한정한 경우, 지정감사인이 등록요건 미유지·부당한 비용 요구 같은 지정 제외 사유(시행령 제16조제2항)에 해당하는 경우, 회사가 지정감사인의 직무제한 대상(공인회계사법 제33조제1항)인 경우, 그리고 금융위원회가 정하는 경우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를 받아 고시 제15조제5항·제6항이 실제 사유를 넓히는데, 독립성 훼손·지배회사와 종속회사의 동일 감사인 지정·회생절차 개시 등이 거기 있습니다. 보수가 비싸다는 이유만으로는 재지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목록에 들어가는 것은 지정감사인이 그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비용 부담을 요구하는 경우이고, 이런 다툼을 조정하는 협의회가 한국거래소에 따로 있습니다(고시 제15조의2).
그리고 여기에 45일의 두 번째 대가가 숨어 있습니다. 고시 제15조제5항제4호는 하향 재지정(회사가 속한 기업군보다 높은 감사인군의 감사인을 지정받았을 때, 그보다 낮은 군의 감사인으로 바꿔 달라는 요청) 신청 자격을 세 부류로 한정합니다 — 법 제11조제1항제1호에 해당하는 회사(스스로 지정을 요청한 회사), 법 제11조제2항 각 호의 회사(주기적 지정), 그리고 시행령 제14조제6항제1호의 회사(상장예정법인)입니다. 선임기한을 놓쳐 제11조제1항제2호로 끌려 들어간 회사는 이 목록에 없습니다. 달력을 놓친 결과는 “지정을 받는다”에서 끝나지 않고, 지정된 감사인의 규모를 낮춰 달라고 요청할 통로까지 닫히는 데까지 갑니다.
감사보수는 어떻게 정해지는가. 시행령 제17조제5항 후단은 증권선물위원회가 적정 감사시간이나 적정 감사보수를 정하여 “권고할 수 있다”고 적습니다. 구속력 있는 결정이 아니라 권고입니다. 회사가 협상의 여지를 완전히 잃는 것은 아니지만, 협상 상대를 고를 수 없는 상태에서 하는 협상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게다가 버틴다고 풀리지도 않습니다. 회사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지정에 따라야 하고(법 제11조제4항), 정당한 이유 없이 따르지 않으면 이사 등 임원과 회계업무 담당자가 형사처벌 대상이 됩니다(법 제44조제1호,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 2주 안에 합의가 어렵다면 구체적인 사유를 적어 금융감독원에 계약 기한 연장을 요청할 수 있을 뿐입니다.
지정이 끝나도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마지막 조항이 남았습니다. 법 제11조제6항은 회사가 지정받은 감사인을 지정 사업연도 이후 최초로 도래하는 사업연도의 감사인으로 선임할 수 없다고 정합니다.
지정 기간이 1년이든 3년이든, 그 기간이 끝난 바로 다음 사업연도에는 감사인을 반드시 새로 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정 기간 동안 회사 사정을 익힌 감사인을 이어서 쓰는 선택지가 법으로 닫혀 있습니다. 상장 준비 회사에게 이 조항은 실무적으로 꽤 무겁습니다. 상장예정법인으로 받은 지정이 끝나면 그다음 사업연도에는 다른 감사인이 들어오고, 기초잔액 검증이 한 번 더 돌아옵니다. 그 부담이 어떻게 생기는지는 초도감사 기초잔액에서 다뤘습니다.
교체 시점을 늦출 방법은 하나 있습니다. 직권 지정사유가 새로 생긴 비상장사(소유·경영 미분리 대형비상장사는 제외)는 첫 사전통지에 대한 의견제출 기한(2주) 안에 지정기간을 3개 사업연도 범위에서 늘려 달라고 한 번 요청할 수 있고, 그러면 그 기간 동안 같은 감사인이 우선 지정됩니다(고시 제10조제2호 단서). 다만 이 선택은 지정 시점에만 열리고, 지정이 끝난 뒤의 교체 자체를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지정을 받은 회사의 할 일은 지정 첫해에 하나 더 생깁니다. 다음 감사인 탐색을 지정 기간이 끝난 뒤가 아니라 지정 기간 안에 끝내 두는 것입니다. 내부회계관리제도 구축(내부회계관리제도 비상장 상장준비)이나 계속기업 관련 커뮤니케이션(계속기업 불확실성 강조사항)처럼, 감사인이 바뀌어도 회사 쪽에 남아 있어야 하는 문서를 그 기간에 정리해 두면 교체 비용이 줄어듭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지정은 회사가 무언가를 잘못해야만 받는 처분이 아닙니다. 정해진 시점에 정해진 결정을 하지 않으면 그 결정을 대신 내리는 장치이기도 하고, 상장을 정한 회사에게는 거쳐야 하는 절차이기도 합니다. 12월 결산법인 대부분에게 그 첫 시점은 2월 14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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