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자산 평가손실의 손금 여부는 9월 30일에 정해집니다 — 회계는 시가가 떨어지면 저가법을 강제하지만 세법은 신고서를 낸 회사에만 그 손실을 돌려주고, 그 신고서를 고칠 수 있는 기한은 결산일 3개월 전에 닫힙니다

창고에 초도 양산 물량이 그대로 서 있습니다. 감사인은 순실현가능가치로 내리라고 하고, 재무팀은 평가손실 8억 원을 잡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 법인세 신고서에서 그 8억 원이 통째로 손금불산입으로 털립니다. 재고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설립 첫해에 내지 않은 신고서 한 장 때문입니다.

💡 한 줄 요약 — 회계는 재고 시가가 떨어지면 저가법을 강제하지만, 법인세법은 평가 자체를 원칙적으로 부인하고 미리 신고한 평가방법으로만 재고를 봅니다. 저가법을 신고하지 않은 법인은 선입선출법으로 강제 평가되어 평가손실 전액이 손금불산입됩니다. 파손·부패로 정상가격에 팔 수 없게 된 재고는 신고와 무관하게 감액할 수 있지만, 값만 내려간 진부화 재고는 그 문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12월 결산법인이 이번 사업연도부터 저가법을 적용하려면 신고 기한은 2026년 9월 30일입니다.


회계는 저가법을 선택지로 주지 않는다

K-IFRS 1002 문단 9는 한 문장입니다. “재고자산은 취득원가와 순실현가능가치 중 낮은 금액으로 측정한다.” 조건도 단서도 없습니다. 문단 28은 원가를 회수하기 어려운 경우로 네 가지를 듭니다 — 물리적으로 손상된 경우,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진부화된 경우, 판매가격이 하락한 경우, 완성하거나 판매하는 데 필요한 원가가 상승한 경우입니다.

외부감사를 아직 K-IFRS로 받지 않는 회사도 사정은 같습니다. 일반기업회계기준 7.16은 “재고자산의 시가가 취득원가보다 하락한 경우에는 저가법을 사용하여 재고자산의 장부금액을 결정한다”고 하고, 시가가 원가 이하로 하락할 수 있는 사유로 손상, 보고기간말로부터 1년 또는 정상영업주기 내에 판매되지 않았거나 생산에 투입할 수 없어 장기체화된 경우, 진부화, 완성·판매 원가 상승을 나열합니다. 두 번째 사유는 하드웨어·소재 스타트업에 특히 직접적입니다. 후속 모델 스펙이 바뀌어 남은 구형 원재료, 파일럿 라인에서 나온 초도 물량, 대량 발주로 확보해 둔 장납기 부품이 여기에 그대로 들어옵니다.

실무에서 자주 놓치는 것이 7.18입니다. 저가법은 항목별로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고, 총액기준으로는 적용할 수 없습니다. 유사하거나 관련 있는 항목을 묶어 적용하는 길이 열려 있기는 하지만, 같은 제품군으로 분류되고 같은 지역에서 생산·판매되며 개별 평가가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로 좁혀져 있고, 한 번 묶었으면 계속 같은 방식을 유지해야 합니다. 잘 팔리는 SKU의 미실현이익으로 안 팔리는 SKU의 평가손실을 상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재고 전체로 보면 여전히 원가 이하로 팔릴 일이 없어 보여도, 항목별로 내려가면 평가손실이 튀어나옵니다. 원재료는 예외 통로가 하나 있는데, 7.17이 “원재료를 투입하여 완성할 제품의 시가가 원가보다 높을 때는 원재료에 대하여 저가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정합니다. 완제품이 아직 원가 위에서 팔린다면 그 원재료는 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손실은 미룰 수 없습니다. 1002 문단 34는 “재고자산을 순실현가능가치로 감액한 평가손실과 모든 감모손실은 감액이나 감모가 발생한 기간에 비용으로 인식한다”고 못박습니다. 회계 쪽에서 CFO에게 주어진 재량은 사실상 없습니다.


세법의 출발점은 정반대다 — “평가를 인정하지 않는다”

법인세법 제42조 제1항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국법인이 보유 자산·부채의 장부가액을 증액 또는 감액한 경우 “그 평가일이 속하는 사업연도와 그 후의 각 사업연도의 소득금액을 계산할 때 그 자산과 부채의 장부가액은 평가 전의 가액으로 한다.” 회계가 강제한 감액을 세법은 없던 일로 되돌리는 것이 원칙입니다.

재고자산에 대해 그 원칙을 여는 예외는 같은 항 제2호 하나입니다. “재고자산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산과 부채의 평가”인데, 시행령 제73조 제1호가 그 재고자산을 제품 및 상품, 반제품 및 재공품, 원재료, 저장품 네 가지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시행령 제74조 제1항이 결정적인 한 줄을 답니다. 재고자산의 평가는 원가법 여섯 가지(개별법·선입선출법·후입선출법·총평균법·이동평균법·매출가격환원법)와 저가법 중 “법인이 납세지 관할세무서장에게 신고한 방법“에 의한다.

저가법은 제74조 제1항 제2호에 별도의 방법으로 앉아 있습니다. “재고자산을 제1호의 규정에 의한 원가법과 기업회계기준이 정하는 바에 따라 시가로 평가한 가액 중 낮은 편의 가액을 평가액으로 하는 방법”입니다. 세법이 저가법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고른 회사에만 준다는 구조입니다. 외화자산·부채도 신고한 방법으로만 평가가 인정되는 같은 구조 위에 있습니다(시행령 제76조 제2항, 외화환산손익 평가방법신고).

고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가 제74조 제4항 제1호입니다. 기한 내에 평가방법을 신고하지 않은 경우 관할세무서장이 선입선출법으로 평가합니다. 선입선출법은 원가법이므로 시가 하락을 전혀 반영하지 않습니다. 회계장부의 재고는 12억 원인데 세무상 재고는 20억 원이 되고, 그 차이 8억 원이 손금불산입 유보로 남습니다.

재고자산 저가법 평가손실 8억 원이 회계에서는 비용으로 인식되지만 평가방법 미신고 시 법인세법상 전액 손금불산입되는 구조를 비교한 도식
같은 재고에 두 개의 장부금액이 생긴다. 그 사이를 갈라 놓은 것은 재고의 상태가 아니라 신고서의 유무다.

신고 기한은 제74조 제3항 제1호가 정합니다. 신설법인은 설립일이 속하는 사업연도의 법인세 과세표준 신고기한까지입니다. 법인 설립 직후 첫 법인세 신고를 세무대리인에게 맡기면서 재고자산 평가방법을 무엇으로 냈는지 확인해 본 창업자는 많지 않습니다. 대개 총평균법이나 선입선출법 같은 원가법으로 나가 있고, 그 선택이 5년 뒤 재고 8억 원을 감액해야 하는 순간까지 그대로 따라옵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같은 항 후단이 “저가법을 신고하는 경우에는 시가와 비교되는 원가법을 함께 신고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저가법은 원가법과 시가를 비교하는 방법이므로 비교 대상 원가법이 특정되어야 성립합니다. 신고서에 저가법만 체크하고 원가법 칸을 비워 두면 신고 자체에 흠이 생깁니다.


파손·부패는 신고와 무관하게 열리는 문이다 — 진부화는 그 앞에서 갈린다

여기까지 읽고 “그럼 폐기한 재고도 손금이 안 되느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다른 문입니다. 법인세법 제42조 제3항 제1호는 평가 부인 원칙에도 불구하고 “재고자산으로서 파손·부패 등의 사유로 정상가격으로 판매할 수 없는 것“은 장부가액을 감액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평가방법 신고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별도의 조항입니다.

감액 방법은 시행령 제78조 제3항 제1호입니다. 해당 재고자산을 “사업연도종료일 현재 처분가능한 시가로 평가한 가액”으로 감액하고, 그 감액한 금액을 해당 사업연도의 손비로 계상하는 방법입니다. 뒷부분이 중요합니다. 결산에 비용으로 실제로 계상해야 하는 결산조정 사항이라는 뜻이고, 결산을 마친 뒤 세무조정으로 밀어 넣거나 나중에 경정청구로 되찾아오는 길이 열려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경계선은 조문 문언에 있습니다. 제42조 제3항 제1호가 요구하는 것은 “정상가격으로 판매할 수 없는 것”이고, 회계가 저가법 사유로 드는 진부화·판매가격 하락은 대체로 “정상가격으로는 팔리지 않는 것”입니다. 물류창고에서 실물이 젖거나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 처리한 재고와, 신모델 출시로 값을 반으로 내려야 나가는 구형 재고는 회계상 같은 평가손실이지만 세법에서 통과하는 문이 다릅니다. 후자는 저가법을 신고해 둔 회사만 손금으로 가져옵니다.

국세청도 같은 선을 그어 왔습니다. 유행이 지난 의류 재고를 저가법으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질의에 “유행이 지난 사유로는 법인세법 제42조 제3항을 적용할 수 없고, 평가방법을 저가법으로 적법하게 신고한 경우에는 시행령 제74조에 따라 평가한다”고 회신했고(제도46013-424, 2000. 11. 20.), 신제품 출시로 구형 모델 가격이 떨어진 경우에도 같은 답이 나왔습니다(법인46012-327).

다만 ‘진부화’라는 이름표가 곧바로 문을 닫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재고가 정상가격으로 판매할 수 없는 상태인지는 재고의 내용·판매여건·상품성에 따라 가리는 사실판단 사항이라는 것이 국세청의 입장입니다(법인46012-369). 그래서 폐기 직전의 불량·변질 재고와 값만 내려간 구형 재고는 결산에서 같은 서류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앞의 문을 두드리려면 그 재고가 정상가격으로는 팔릴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실물 기준으로 증명해야 하고, 그 증명이 안 되는 재고는 저가법 신고 여부가 유일한 갈림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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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0일 — 하루 늦으면 잃는 것은 하루가 아니라 한 번의 결산이다

이미 원가법으로 신고돼 있는 회사가 저가법으로 갈아타는 길이 시행령 제74조 제3항 제2호입니다. 신고를 한 법인이 평가방법을 변경하려면 “변경할 평가방법을 적용하고자 하는 사업연도의 종료일 이전 3월이 되는 날“까지 변경신고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12월 결산법인이 2026 사업연도부터 저가법을 쓰려면 기한은 2026년 9월 30일입니다.

애초에 아무 신고도 하지 않아 선입선출법을 적용받고 있는 회사는 제74조 제6항이 같은 기한을 겁니다. 무신고 상태에서 평가방법을 바꾸려면 “변경할 평가방법을 적용하려는 사업연도의 종료일 전 3개월이 되는 날까지” 변경신고를 해야 합니다. 결국 두 경우 모두 9월 30일에 문이 닫힙니다.

늦으면 어떻게 되는지가 제74조 제5항입니다. 기한이 지난 뒤에 신고한 경우 “그 신고일이 속하는 사업연도까지는 제4항의 규정을 준용하고, 그 후의 사업연도에 있어서는 법인이 신고한 평가방법에 의한다.” 10월 1일에 제출하면 신고일이 속한 2026 사업연도는 여전히 선입선출법이고, 저가법은 2027 사업연도부터 적용됩니다. 12월 결산을 앞두고 재고 감액이 예상되는 회사에게 이 한 달의 차이는 2026년 결산에서 손금 8억 원이 통째로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재고자산 평가방법 변경신고를 9월 30일 전후로 제출했을 때 저가법 적용 사업연도가 한 해 달라지는 구조를 보여주는 평행 타임라인 도식
하루 늦은 신고서가 잃는 것은 하루가 아니라 한 번의 결산이다.

임의로 바꾸면 세법이 둘 중 세금이 많은 쪽을 고른다

기한을 놓친 회사가 “그냥 결산에서 저가법으로 평가해 버리자”고 생각한다면, 제74조 제4항 단서를 먼저 읽어야 합니다.

제4항은 세 가지 경우에 선입선출법을 강제합니다. 제1호 무신고, 제2호 신고한 평가방법 외의 방법으로 평가한 경우, 제3호 변경신고 없이 방법을 바꾼 경우입니다. 그런데 단서가 붙습니다. “다만, 제2호 또는 제3호에 해당하는 경우로서 신고한 평가방법에 의하여 평가한 가액이 선입선출법에 의하여 평가한 가액보다 큰 경우에는 신고한 평가방법에 의한다.”

읽는 방향을 뒤집으면 이렇습니다. 임의변경에 대해서는 선입선출법 평가액과 원래 신고한 방법의 평가액 중 큰 쪽을 택합니다. 앞의 사례에서 신고된 방법이 총평균법이고 그 평가액이 19억 원이라면, 선입선출법 20억 원과 비교해 큰 쪽인 20억 원이 세무상 재고가 됩니다. 저가법으로 계산한 12억 원은 어느 쪽 비교에도 들어오지 못합니다. 재고 평가액이 크다는 것은 매출원가가 작다는 뜻이고, 결국 과세소득이 큰 쪽입니다. 세법이 제재로 선입선출법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둘 중 세금이 많이 나오는 쪽을 고른다는 것이 조문의 실제 작동 방식입니다. 반대로 무신고(제1호)에는 단서가 없어 선입선출법 하나로 끝납니다.

재고자산 평가방법 무신고와 임의변경 시 선입선출법과 신고방법 평가액 중 큰 금액이 채택되는 구조를 비교한 막대 도식
단서가 고르는 기준은 ‘정확한 금액’이 아니라 ‘큰 금액’이다.

제출 서류도 따로 있습니다. 제74조 제7항은 재고자산을 평가한 법인이 법인세 신고와 함께 재고자산평가조정명세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법 제42조 제4항은 평가한 자산·부채의 평가에 관한 명세서 제출을 별도로 요구합니다. 저가법 신고를 제때 냈더라도 명세서가 빠지면 조사 단계에서 평가 근거를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합니다.


손금불산입은 사라지지 않는다 — 다만 그 세금효과를 자산으로 잡는 건 별개다

손금불산입 8억 원은 유보로 남습니다. 그 재고를 실제로 팔거나 폐기해 세무상 취득가액이 소멸하는 사업연도에 손금으로 추인됩니다. 영구히 없어지는 돈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문제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입니다. 적자 구간의 스타트업이라면 손금불산입 8억 원은 곧 이월결손금이 8억 원 줄어드는 것입니다(이월결손금). 흑자로 돌아선 뒤에야 값이 매겨지는 자산이 8억 원어치 깎이는 셈이고, 법인세율 20% 구간으로 환산하면 1억 6,000만 원입니다. 회계 쪽에서는 이 차이가 차감할 일시적차이가 되어 이연법인세자산 후보가 되지만, 최근 몇 개 사업연도 연속 손실을 낸 회사가 그 자산을 인식할 수 있느냐는 완전히 별개의 판단입니다(이연법인세자산 결손금 인식요건). 자본화로 미뤄 둔 비용이 나중에 손상으로 한꺼번에 터지는 구조와 같은 종류의 시차입니다(개발비 자본화 함정).

재고 평가손실이 손금이 되느냐는 재고를 얼마나 정확히 평가했느냐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결산일 3개월 전까지 어떤 신고서가 관할세무서에 가 있었느냐로 정해집니다.

재고를 쌓지 않는 회사라면 지나가도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지금 소재·부품·장비와 하드웨어 쪽으로 시리즈A·B가 몰리고 있고, 그 돈의 상당 부분이 초도 양산과 장납기 부품 선구매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재고는 제품 스펙이 한 번 바뀌는 순간 회계장부에서 먼저 값이 깎입니다. 그때 세무조정계산서에서 그 손실이 살아남을지는, 지금 회사의 재고자산 평가방법이 무엇으로 신고돼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걸리는 10분에 달려 있습니다. 12월 결산법인이라면 그 확인을 미룰 수 있는 날짜가 9월 30일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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