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침해 소송을 안은 채로 상장 예비심사를 준비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대표가 “지면 제가 개인 재산으로 전액 물어주겠다”는 확약서를 썼고 그 서류로 심사 쪽 질문 하나는 넘어갔는데, 같은 서류를 본 감사인은 충당부채를 그대로 잡으라고 합니다. 회사는 모순이라고 느끼지만, 두 사람은 처음부터 다른 질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 한 줄 요약 — 심사는 “이 위험이 회사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할 수 있는가”를 묻고, 회계는 “보고기간 말에 회사에 현재의무가 존재하는가”를 묻습니다. 기업회계기준서 제1037호는 제삼자가 변제하지 못하면 회사가 전체 금액을 이행해야 하는 한 그 전체 금액을 충당부채로 인식하게 하고(문단 56), 변제는 받을 것이 ‘거의 확실’할 때만 별도의 자산으로, 그것도 충당부채 금액을 넘지 못하게 인식하도록 합니다(문단 53). 확약서가 움직이는 것은 부채가 아니라 자산 쪽입니다. 그리고 이건 상장 준비 회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예고한 2027년 비상장회사 중점심사 회계이슈 네 개 중 하나가 정확히 이 항목이고, 대상은 지금 마감 중인 2026년 재무제표입니다.
📋 목차
확약서는 의무를 없애지 못합니다
제1037호 문단 14는 충당부채를 세 요건으로 잠급니다. 과거사건의 결과로 현재의무가 존재할 것, 그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경제적 효익이 있는 자원을 유출할 가능성이 높을 것, 필요한 금액을 신뢰성 있게 추정할 수 있을 것. 확약서가 어느 요건을 건드리는지 보면 답이 나옵니다. 소송의 상대는 원고이고, 회사가 원고에게 지는 의무는 대표가 무엇에 서명하든 그대로 남습니다. 문단 56의 문언이 이 상황을 그대로 적어 두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기업은 전체 의무 금액에 대하여 책임이 있으므로, 제삼자가 변제할 수 없게 되면 전체 의무 금액을 이행해야 할 책임을 진다. 이 경우에 전체 의무 금액을 충당부채로 인식하고 기업이 의무를 이행한다면 변제를 받을 것이 거의 확실하게 되는 때에만 그 예상 변제금액을 별도의 자산으로 인식한다.
경계선은 바로 다음 문단에 있습니다. 문단 57은 “제삼자가 지급하지 않더라도 기업이 해당 금액을 지급할 의무가 없는 경우에는 이를 충당부채에 포함하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즉 판정 질문은 “대표가 물어줄 것인가”가 아니라 “대표가 못 물어주면 회사가 물어줘야 하는가”입니다. 원고가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 답이 아니오가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확약서는 회사와 대표 사이의 약속이지, 원고와 회사 사이의 채무를 지우는 문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확약서는 어디로 갑니까. 문단 53이 자리를 지정합니다.
충당부채를 결제하기 위하여 필요한 지출액의 일부나 전부를 제삼자가 변제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기업이 의무를 이행한다면 변제를 받을 것이 거의 확실하게 되는 때에만 변제금액을 별도의 자산으로 인식하고 회계처리한다. 다만 자산으로 인식하는 금액은 관련 충당부채 금액을 초과할 수 없다.
문턱이 ‘거의 확실’입니다. 충당부채를 인식할 때 쓰는 ‘가능성이 높다'(문단 23 — 일어날 가능성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보다 높은 경우)보다 훨씬 높은 기준이고, 기준서가 우발자산을 자산으로 끌어올릴 때 요구하는 것과 같은 수준입니다(문단 33). 여기서 실무 판정이 갈립니다. 대표 개인의 확약이 이 문턱을 넘으려면 확약의 법적 구속력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시점에 실제 지급능력이 확인돼야 합니다. 상장 전 대표의 자산이 대부분 비상장 자기 회사 주식이라면, 회사가 지는 순간 그 주식의 가치도 같이 흔들립니다. 확약과 회수 가능성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구조에서 ‘거의 확실’은 잘 성립하지 않습니다.
확약서를 문단 53이 말하는 ‘제삼자의 변제’로 볼지, 회사 밖의 별개 약정으로 볼지는 기준서가 직접 답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느 쪽으로 가도 도착지는 같습니다. 제삼자 변제로 보면 ‘거의 확실’을 증명해야 자산이 한 줄 생기고, 별개 약정으로 보면 애초에 재무제표에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부채가 줄어드는 갈래는 어느 쪽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자산으로 인식하더라도 재무상태표에서는 상계되지 않습니다. 제1001호 문단 32가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에서 요구하거나 허용하지 않는 한 자산과 부채 그리고 수익과 비용은 상계하지 아니한다”고 못 박고, 제1037호가 상계를 허용한 자리는 문단 54의 포괄손익계산서 한 곳뿐입니다. 손익에서는 비용과 변제금액을 상계해 표시할 수 있지만, 재무상태표에서는 부채 20억과 자산 20억이 각각 총액으로 남습니다. 변제자산을 인정받으면 자본은 방어되지만, 부채 금액 자체는 한 푼도 줄지 않고 총자산·총부채가 동시에 부풀어 오릅니다.
한 가지가 더 따라붙습니다. 대표이사는 기업회계기준서 제1024호가 정의하는 특수관계자입니다. 확약서를 재무제표에 반영하든 하지 않든, 그 약정 자체가 특수관계자와의 거래·약정으로 성격과 조건을 공시할 대상인지 먼저 판정해야 합니다. 부채를 없애려던 서류가 다른 주석의 입력값이 되는 구조는 여기서도 반복됩니다.
소송 충당부채는 다른 항목과 묶이지 않습니다
주석으로 넘어가면 두 번째 장치가 작동합니다. 문단 87은 어떤 충당부채나 우발부채를 하나의 유형으로 통합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을 두면서, 예시를 하나 붙여 두었습니다. 다양한 제품의 보증과 관련된 충당부채는 하나의 유형으로 묶을 수 있지만, 제품보증과 관련된 것이더라도 법적 소송 중인 것은 별도의 유형으로 분리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입니다.
문언은 “적절할 것이다”라는 권고형이지만, 실무에서 이 예시가 하는 일은 분명합니다. 소송 충당부채를 ‘기타충당부채’에 섞어 총액 한 줄로 처리하는 선택에 감사인이 근거를 요구할 자리가 생깁니다. 유형이 분리되면 문단 84가 요구하는 표를 그 유형에 대해 따로 만들어야 합니다 — 기초·기말 장부금액, 당기 추가액, 당기 사용액, 당기 환입액, 그리고 현재가치로 평가했다면 기간 경과에 따른 증가분과 할인율 변동 효과까지. 추정치를 올렸는지 내렸는지, 실제로 쓴 돈이 얼마인지가 한 해 안에서 분해되어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문단 85는 여기에 충당부채의 특성, 유출이 예상되는 시기, 금액·시기의 불확실성 정도까지 붙입니다.
여기서 회피 수단이 공시 항목으로 되돌아오는 역설이 생깁니다. 문단 85(3)이 공시하도록 요구하는 항목 중 하나가 “제삼자의 변제예상금액과 이와 관련하여 인식한 자산 금액”입니다. 확약서를 근거로 변제자산을 잡으면, 그 금액과 근거가 주석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부채를 지우려던 서류가 주석에 새 줄을 하나 더 만드는 셈입니다.
불리해서 못 쓰겠다면, 생략은 되지만 사실은 남습니다
소송 상대방이 우리 주석을 읽는다는 점 때문에 공시를 최소화하려는 요구가 나옵니다. 기준서는 그 길을 열어 두었습니다. 다만 대가를 붙여 두었습니다.
극히 드문 경우이지만 문단 84~89에서 요구하는 모든 사항이나 일부 사항을 공시하는 것이 (…) 진행 중인 상대방과의 분쟁에 현저하게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그에 관한 공시를 생략할 수 있다. 다만 해당 분쟁의 전반적인 특성과 공시를 생략한 사실 및 사유는 공시하여야 한다.(문단 92)
생략은 침묵이 아닙니다. “생략했다”는 문장이 주석에 남고, 그 문장은 소송이 있다는 사실보다 오히려 눈에 띕니다. 우발부채 쪽에도 같은 장치가 하나 더 있습니다 — 문단 91은 문단 86과 89가 요구하는 정보 중 실무적인 이유로 공시하지 않은 사항이 있으면 그 사실을 공시하도록 합니다. 어느 경로로 가도 주석에 무언가는 적힙니다.
충당부채 인식을 피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원 유출 가능성이 50%를 넘지 않아 부채로 잡지 않았다면 우발부채가 되는데, 문단 86은 유출 가능성이 희박하지 않다면 분류별로 그 특성을 공시하게 하고, 실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경우에는 재무적 영향의 추정 금액, 불확실성의 정도, 변제 가능성까지 공시하도록 합니다. ‘희박(remote)’은 대단히 낮은 문턱입니다. 소송이 제기돼 진행 중이라면 그 문턱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는 사실상 없습니다. 문단 16(2)은 아예 현재의무가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도 유출 가능성이 희박하지 않으면 우발부채를 공시하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충당부채를 피하면 우발부채가 되고, 우발부채 공시를 피하면 “생략했다”가 남습니다. 소송이 주석에서 사라지는 경로는 설계돼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발부채로 처리했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문단 30은 우발부채를 지속적으로 평가해, 유출 가능성이 높아진 기간의 재무제표에 충당부채로 인식하도록 합니다. 1심 판결, 감정 결과, 상대의 청구취지 확장 같은 사건이 그 전환점이 됩니다.
회계가 비용으로 잡은 해에, 세금은 깎이지 않습니다
여기서 CFO가 한 번 더 놀랍니다. 충당부채 20억을 잡아 당기순손실이 20억 늘었는데, 법인세는 그만큼 줄지 않습니다.
법인세법 제19조 제2항은 손비를 “그 법인의 사업과 관련하여 발생하거나 지출된” 것으로 정하고, 제40조 제1항은 손금의 귀속사업연도를 “손금이 확정된 날이 속하는 사업연도”로 정합니다. 추정으로 먼저 잡은 비용은 이 확정 요건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법인세법이 준비금·충당금의 손금산입을 허용한 자리는 제4관(제29조~제38조)에 닫혀 있습니다. 이름이 붙은 준비금·충당금은 일곱 개뿐이고(고유목적사업준비금, 책임준비금, 비상위험준비금, 해약환급금준비금, 퇴직급여충당금, 대손충당금, 구상채권상각충당금 — 제29조~제35조), 나머지 제36조~제38조는 국고보조금·공사부담금·보험차익으로 취득한 자산에 대한 손금산입입니다. 소송 관련 충당부채는 어느 쪽에도 없습니다. “소송충당부채는 손금이 아니다”라고 적힌 조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확정주의와 이 열거가 맞물려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구조입니다. 결과적으로 인식 연도에는 손금불산입(유보)으로 처리되고, 판결이나 합의로 금액이 확정돼 실제 지급하는 연도에 손금으로 추인됩니다.
이 시점 차이는 차감할 일시적차이가 되어 이연법인세자산의 후보가 됩니다. 다만 후보일 뿐입니다. 미래에 그 차이를 쓸 만큼의 과세소득이 예상돼야 자산으로 올라가는데, 소송을 안고 있는 적자 회사에서 그 요건이 충족되기는 쉽지 않습니다([[이연법인세자산-결손금-인식요건]]). 회계상 손실은 올해 전부 나고, 세금 효익은 언제 실현될지 모르는 채로 남습니다.
그리고 지급해도 영영 손금이 되지 않는 구역이 있습니다. 법인세법 제21조의2는 실제 발생한 손해를 초과해 지급하는 손해배상금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을 손금불산입하고, 시행령 제23조는 그 범위를 시행령 별표 1에 열거된 법률에 따라 지급한 손해배상액 중 실제 손해액 초과분, 그리고 외국 법령에 따라 지급한 초과분으로 정합니다. 실제 손해액이 분명하지 않으면 지급액에 (배수 − 1) / 배수를 곱해 계산하는데, 여기서 배수는 그 법률이 정한 손해배상액 상한 배수입니다. 별표 1에는 25개 법률이 열거돼 있고 「특허법」 제128조 제8항도 그중 하나입니다 — 고의 침해가 인정되면 법원이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액을 정할 수 있습니다. 즉 이 글의 예시처럼 고의 침해가 인정된 특허 소송이라면, 최종 지급액 중 그 초과분은 회계상 비용이면서 세무상으로는 시점 차이가 아니라 영구적 차이가 됩니다.
한 가지 더. 확약서가 실제로 실행되어 대표가 회사 대신 배상금을 지급하면, 회사 쪽에는 채무가 소멸한 만큼의 이익이 생깁니다. 그 이익의 성격을 어떻게 볼지, 대표 개인 쪽에서는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확약의 법적 구성에 따라 갈리므로, 확약서를 쓰는 단계에서 세무 처리까지 함께 설계해 두는 편이 낫습니다.
지금 마감 중인 결산이 심사 대상입니다
이 주제를 상장 준비 회사의 문제로만 두면 절반을 놓칩니다.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외부감사법에 따라 비상장회사(사업보고서 제출대상 등 제외)의 재무제표 심사·감리를 수행하고, 매년 6월 다음 해 중점심사 회계이슈를 미리 예고합니다. 2026년 6월에 예고된 네 개 이슈 — 장기공사계약 수익인식, 지분법, 충당부채와 우발부채, 특수관계자 거래 공시 — 중 세 번째가 이 글의 주제입니다.
선정배경도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판매 후 품질 보증, 손실부담계약, 소송, 지급보증과 관련해 충당부채를 과소계상하려는 유인이 상존하고, 우발부채 공시를 간과하는 오류 사례가 빈번하다는 것입니다. 심사 대상 회사를 고르는 기준은 충당부채의 변동성, 매출액 대비 충당부채 비율, 자산 규모 대비 타법인 지급보증이 거액인 회사 등입니다. 대상 재무제표는 2026 회계연도, 즉 지금 마감 중인 결산이고 심사는 2027년에 진행됩니다.
그래서 결산 전에 정리해 둘 것은 확약서가 아니라 순서입니다. ① 진행 중이거나 예고된 분쟁을 전부 목록으로 만들고, 각 건에 대해 “제삼자가 못 갚으면 회사가 갚는가”를 먼저 판정합니다. ② 예이면 전체 의무 금액이 인식 대상이고, 그때부터 논점은 유출 가능성과 추정 금액으로 좁혀집니다. 법률자문 의견서는 이 단계에서 필요하지, 부채를 없애는 데 쓰이지 않습니다. ③ 확약서나 보험이 있다면 ‘거의 확실’을 무엇으로 증명할지 미리 정합니다. 증명하면 자산이 생기고 동시에 주석에 금액이 적힙니다. 증명하지 못하면 부채만 남습니다. ④ 유형 분리를 전제로 주석 표를 미리 짜 두고, 전년도 대비 추정치의 움직임을 회사가 먼저 설명할 수 있게 만듭니다. 감사인이 묻기 전에 회사가 준비한 설명과, 질문을 받고 만든 설명은 심사에서도 실사에서도 다르게 읽힙니다([[재무실사-가지급금-가수금]], [[계속기업-불확실성-강조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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