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기로 빌린 시설자금 20억이 결산일 하루 만에 유동부채가 됩니다. 대출을 갚은 것도, 만기가 당겨진 것도 아닙니다. 12월 31일 기준 부채비율이 약정선을 넘겼고 그 순간 은행이 즉시 상환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 하나 때문입니다. 1월에 은행 지점장에게서 “그 건은 문제 삼지 않겠다”는 확인서를 받아 와도 재무제표는 바뀌지 않습니다.
💡 한 줄 요약 — 부채의 유동·비유동은 만기가 아니라 결산일 현재 12개월 이상 결제를 연기할 권리가 있었는가로 갈립니다(K-IFRS 1001 문단 69(4) / 일반기업회계기준 2.22⑶). 그래서 결산일 이후에 받은 은행의 양해는 분류를 되돌리지 못하고(문단 74 / 2.26), 결산일 이전에 받았더라도 유예기간이 결산일로부터 12개월에 못 미치면 결과는 같습니다(문단 75 / 2.27). 한편 약정을 언제 재기로 했는지가 분류를 가르는데(문단 72B / 2.22의3), 측정 기준일을 결산일 뒤로 옮겨 분류를 피하더라도 그 시점이 12개월 이내라면 주석 공시는 그대로 붙습니다(문단 76ZA / 2.28의2). 재분류가 바꾸는 것은 부채비율이 아니라 유동비율과 순운전자본입니다.
📋 목차
유동·비유동을 가르는 것은 만기가 아니라 ‘연기할 권리’입니다
먼저 기준서의 문언을 정확히 놓겠습니다. K-IFRS 제1001호 문단 69는 유동부채를 네 가지로 정의합니다.
부채는 다음의 경우에 유동부채로 분류한다. (1)정상영업주기 내에 결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주로 단기매매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3)보고기간 후 12개월 이내에 결제하기로 되어 있다. (4)보고기간말 현재 보고기간 후 적어도 12개월 이상 부채의 결제를 연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 밖의 모든 부채는 비유동부채로 분류한다.
앞의 세 개는 직관적입니다. 문제는 네 번째입니다. 만기가 2년 남은 차입금은 (3)에 해당하지 않지만, (4)에 걸리면 그것으로 유동부채가 됩니다. 만기와 분류가 분리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자주 나오는 반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K-IFRS를 적용하지 않는데요.” 외부감사를 받더라도 상장사·금융회사가 아닌 비상장 스타트업은 상당수가 일반기업회계기준을 씁니다. 그런데 이 지점은 두 기준이 같습니다. 일반기업회계기준 문단 2.22는 유동부채를 세 가지로 열거하는데, 그 ⑶이 “보고기간종료일로부터 1년을 초과하여 부채의 결제를 연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부채”입니다. K-IFRS 69(4)와 정확히 같은 자리이고, 표현이 ’12개월’에서 ‘1년’으로, ‘보고기간말’이 ‘보고기간종료일’로 바뀌었습니다. 경계값이 ’12개월 이상’과 ‘1년 초과’로 하루 갈리는데, 그 차이는 뒤에서 다시 봅니다. K-IFRS 여부로 피해 갈 수 있는 논점이 아닙니다.
그 ‘권리’에는 두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문단 72A(일반기업회계기준 2.22의2)는 이 권리가 실질적이어야 하고, 보고기간말 현재 존재해야 한다고 못 박습니다. 뒤에서 볼 모든 결론이 이 한 문장에서 나옵니다 — 권리는 결산일이라는 시점에 사진처럼 찍히고, 그 사진은 나중에 수정되지 않습니다.
반대 방향도 같은 논리로 작동합니다. 문단 73(2.25)은 만기가 12개월 이내로 다가온 차입금이라도 기존 계약조건에 따라 12개월 이상(2.25는 1년 초과) 부채를 연장할 권리가 회사에 있으면 비유동부채라고 합니다. 여기서 빠뜨리기 쉬운 것이 기간 요건입니다 — 연장 권리가 있어도 그 권리로 미룰 수 있는 기간이 8개월이면 비유동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문장 끝에 조건이 하나 더 붙습니다. “만약 기업에 그러한 권리가 없다면, 차환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유동부채로 분류한다.”
이 문단이 한도대출에서 실제로 갈리는 방식은 두 층으로 나눠 봐야 합니다. 매년 관행적으로 연장해 온 운전자금 한도라도 연장이 은행의 재량이라면 회계는 그 관행을 권리로 세지 않습니다. 반대로 약정한도 자체가 3년짜리로 확정되어 있고 그 안에서 3개월씩 인출·상환을 반복하는 구조라면, 회사는 기존 약정조건에 따라 계속 인출할 권리를 가지므로 비유동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한도대출이라는 이름만 보고 일괄 판정할 일이 아니라, 약정한도의 만기와 개별 인출분의 만기를 갈라 봐야 합니다.
한 가지 더 짚어 둘 것이 있습니다. 전환사채를 발행한 회사라면 “투자자가 주식으로 바꾸면 현금이 나갈 일이 없으니 유동부채가 아니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옵니다. 여기서는 두 기준의 문언이 갈립니다. 일반기업회계기준 2.28의4는 조건을 달지 않습니다 — “계약 상대방의 선택에 따라 기업이 자신의 지분상품을 이전하여 부채를 결제할 수 있는 조건은 부채의 유동·비유동 분류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가 문단 전문입니다. 반면 K-IFRS 제1001호 문단 76B는 조건을 답니다. 그 옵션을 제1032호에 따라 지분상품으로 분류하고 복합금융상품의 자본 요소로서 부채와 분리해 인식하는 경우라면 분류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뒤집으면 K-IFRS를 적용하면서 전환권이 자본으로 분리되지 않은 전환사채는 이 문단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제1032호 문단 16⑵㈏는 “확정 수량의 자기지분상품에 대하여 확정 금액의 현금 등 금융자산을 교환해야만 결제할 파생상품”만 지분상품으로 봅니다. 리픽싱 조항으로 발행할 주식 수가 움직이면 이 확정 대 확정 요건이 깨지므로, 그 전환권은 자본으로 분리되지 않고 따라서 문단 76B의 보호도 없습니다. 일반기업회계기준을 적용한다면 2.28의4에 조건 자체가 없어 이 논점이 생기지 않습니다.
결산일 다음 날 받은 양해는 회계가 못 본 척합니다
이제 본론입니다. 부채비율 유지 약정을 결산일 기준으로 위반했다고 해 봅시다. 실무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은행에 연락해 “이번 건은 기한이익 상실로 보지 않겠다”는 확인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확인서를 감사인에게 제출하면 비유동부채로 남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K-IFRS 제1001호 문단 74는 그 기대를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보고기간말 이전에 장기차입약정의 약정사항을 위반했을 때 대여자가 즉시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채무는 보고기간 후 재무제표 발행승인일 전에 대여자가 약정위반을 이유로 상환을 요구하지 않기로 합의하더라도 유동부채로 분류한다. 그 이유는 기업이 보고기간말 현재 그 시점으로부터 적어도 12개월 이상 결제를 연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기업회계기준 2.26도 같은 말을 합니다. “장기차입약정의 약정사항을 위반하여 채권자가 즉시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채무는, 보고기간종료일과 재무제표가 사실상 확정된 날 사이에 채권자가 상환을 요구하지 않기로 합의하더라도 유동부채로 분류한다.” 두 기준의 컷오프 표현이 ‘재무제표 발행승인일’과 ‘재무제표가 사실상 확정된 날’로 다를 뿐, 그 사이에 무엇을 받아 오든 결론이 같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결산일 이전에 받으면 되느냐. 여기서 대부분이 멈추는데, 짝이 되는 문단 75(일반기업회계기준 2.27)를 읽어야 실무 답이 나옵니다. 2.27이 요건을 셋으로 명시합니다.
장기차입약정을 위반하여 채권자가 즉시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채무라도, 다음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에는 비유동부채로 분류한다. ⑴ 보고기간종료일 이전에 차입약정의 위반을 해소할 수 있도록 보고기간종료일로부터 1년을 초과하는 유예기간을 제공하기로 합의하였다. ⑵ ⑴에서의 유예기간 내에 기업이 차입약정의 위반을 해소할 수 있다. ⑶ ⑴에서의 유예기간동안 채권자가 즉시 상환을 요구할 수 없다.
세 요건 중 실무에서 실제로 걸리는 것은 유예기간의 길이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두 기준의 문언이 미세하게 갈립니다. K-IFRS 문단 75는 “보고기간 후 적어도 12개월 이상의 유예기간”이라 하고, 일반기업회계기준 2.27⑴은 “보고기간종료일로부터 1년을 초과하는 유예기간”이라 합니다. 12월 결산 회사가 다음 해 12월 31일까지의 유예를 받았다면 K-IFRS에서는 요건을 채우고 일반기업회계기준에서는 하루가 모자랍니다. 참고로 호 구분(⑴⑵⑶)이 붙어 있는 것은 2.27이고, K-IFRS 문단 75는 같은 내용을 호 없이 한 문장으로 씁니다.
기산점이 확인서를 받은 날이 아니라 결산일이라는 점도 함께 봐야 합니다. 12월 20일에 받아 온 12개월짜리 확인서는 다음 해 12월 20일에 끝나므로, 결산일 기준으로는 11개월 20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날짜만 앞당겨 놓고 기간을 그대로 두면 요건을 채우지 못합니다.
실무에서 이 요건이 걸리는 이유는 은행이 주는 양해가 대체로 훨씬 짧기 때문입니다. “다음 분기 말까지”, “차기 결산 시점까지 재무구조 개선을 조건으로”, “일시적 사유로 판단하여 이번 회차에 한하여” 같은 식으로 기간이 짧게 끊기는 경우가 많습니다(문언과 부여 기간은 은행·상품별로 다르므로 실제 확인서를 봐야 합니다). 3개월짜리든 6개월짜리든, 결산일로부터 12개월에 못 미치면 회계 결과는 양해를 못 받은 것과 같습니다.
세 번째 요건도 놓치기 쉽습니다. 유예기간을 넉넉히 준 문서라도 “은행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기한의 이익 상실을 선언할 수 있다”는 유보 조항이 붙어 있으면 2.27⑶이 무너집니다. 양해각서에서 확인할 것은 기간과 유보 조항 두 줄입니다.
은행에 요청할 문서의 스펙은 하나로 정해집니다 — 결산일 이전 날짜로, 결산일로부터 12개월을 넘기는 유예기간을 명시하고, 그 기간 중 기한이익 상실 선언권을 유보하지 않는 확인서.
받아 오지 못했다면 그다음은 공시입니다. K-IFRS 문단 76은 결산일과 재무제표 발행승인일 사이에 ⑵ 위반사항이 해소된 경우와 ⑶ 위반사항을 해소할 수 있는 유예기간을 부여받은 경우를 수정을 요하지 않는 보고기간후사건으로 주석에 공시하도록 합니다. 일반기업회계기준 2.28도 같은 사건들을 주석 기재 대상으로 열거합니다.
다만 이 열거가 무조건 열려 있는 것은 아니고, 여기서 두 기준이 갈립니다. 일반기업회계기준 2.28⑶은 “보고기간종료일로부터 1년을 초과하는 유예기간을 채권자로부터 획득한 경우”라고 기간을 못 박습니다. 결산일 이후에 받아 온 3개월짜리 확인서는 분류도 못 바꾸고 이 열거에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반면 K-IFRS 문단 76⑶은 “위반사항을 해소할 수 있는 유예기간을 대여자로부터 부여받은 경우(문단 75)”라고만 하고 기간 요건을 두지 않으므로, 짧은 유예기간이라도 주석 공시 대상이 됩니다. 어느 쪽이든 그 확인서가 아무 데도 쓰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 그 문서는 뒤에서 볼 계속기업 평가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약정을 언제 재기로 했는지가 분류를 가릅니다
여기서부터가 개정 문단의 영역입니다. K-IFRS 제1001호 문단 72B와 일반기업회계기준 2.22의3은 약정사항의 준수 시점을 기준으로 두 갈래를 만듭니다. 두 기준 모두 2024년 1월 1일 이후 최초로 시작되는 회계연도부터 적용됩니다(K-IFRS 제1001호 문단 139U·139W / 일반기업회계기준 ‘시행일 및 경과규정’ — 2023년 개정 ‘부채의 유동·비유동 분류’. 조기적용 가능). 12월 결산 회사라면 2024 사업연도 재무제표부터 이 문단들이 이미 작동해 왔다는 뜻입니다.
문언은 한 군데가 다릅니다. K-IFRS 문단 72B⑴은 “기업이 보고기간말 또는 보고기간말 이전에 약정사항을 준수하도록 요구받는다면”으로 결산일 당일을 명시하는데, 일반기업회계기준 2.22의3⑴은 “보고기간종료일 이전에”로 줄여 놓았습니다. 취지는 같게 읽히지만, 결산일 당일 재무상태를 재는 약정을 문언으로 정면 포섭하는 것은 K-IFRS 쪽입니다. 아래는 일반기업회계기준 2.22의3의 문언입니다.
⑴만약 기업이 보고기간종료일 이전에 약정사항을 준수하도록 요구받는다면, 이러한 약정사항은 (…) 보고기간종료일 현재 그러한 권리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 비록 약정사항의 준수 여부가 보고기간 후에만 평가되더라도 (…) 이러한 약정사항은 보고기간종료일 현재 그러한 권리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 ⑵만약 기업이 보고기간 후에만 약정사항을 준수하도록 요구받는다면(예: 기업의 보고기간종료일로부터 6개월 후 재무상태에 기초한 약정사항), 이러한 약정사항은 (…) 보고기간종료일 현재 그러한 권리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⑴이 막는 것은 실무에서 흔한 방어 논리입니다. “12월 31일 기준 부채비율은 3월에 결산이 끝나야 계산됩니다. 12월 31일 그 시점에는 위반 여부를 아무도 몰랐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결론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기준은 약정이 어느 시점의 재무상태를 재도록 되어 있는가이지, 언제 계산이 끝났는가가 아닙니다. 12월 31일 재무상태를 재는 약정이라면, 그 위반은 12월 31일 자로 존재합니다.
⑵는 반대편 문을 열어 둡니다. 약정이 다음 해 6월 30일 재무상태를 재도록 되어 있다면, 그 약정은 12월 31일 현재의 권리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6월에 위반이 확실히 예상되더라도 12월 31일 재무제표에서는 비유동부채입니다.
이 조합이 실무에 주는 함의는 분명합니다. 재무약정의 측정 기준일은 협상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반기 기준 약정이냐 연 1회 결산일 기준 약정이냐, 측정 시점을 결산일에 붙이느냐 떼느냐에 따라 같은 재무상태에서도 재무제표가 달라집니다. 차입약정을 새로 쓰거나 조건을 변경하는 자리라면, 금리와 담보만 볼 것이 아니라 이 줄을 함께 봐야 합니다.
다만 여기에 대칭이 걸려 있습니다. ⑵ 경로로 비유동을 유지하면 공시 의무가 따라옵니다. K-IFRS 제1001호 문단 76ZA의 문언이고, 일반기업회계기준 2.28의2가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문단 69~75를 적용할 때, 차입 약정으로 인해 발생한 부채의 결제를 연기할 수 있는 기업의 권리가 보고기간 후 12개월 이내에 약정사항을 준수하는지 여부에 좌우될 때, 기업이 그 부채를 비유동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 기업은 다음의 정보를 주석에 공시한다. ⑴약정사항에 관한 정보(약정사항의 성격 및 기업이 약정사항을 준수해야 하는 시점 포함)와 관련 부채의 장부금액. ⑵기업이 약정사항을 준수하기 어려울 수 있음을 나타내는 사실과 상황이 있다면 그 내용 (…) 그러한 사실과 상황에는 보고기간 말 현재 기업의 상황을 기초로 평가한다면 약정사항이 준수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도 포함될 수 있다.
첫 줄의 조건이 이 공시의 범위를 정합니다. 측정 기준일을 결산일 뒤로 옮기더라도 그 시점이 결산일로부터 12개월 이내라면 공시는 그대로 붙습니다. 기준일을 12개월 너머까지 밀어내면 이 공시 의무 자체는 발동하지 않지만, 대여자가 그런 조건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드뭅니다. 실무에서 협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구간은 대개 12개월 안쪽이고, 그 안에서는 분류만 바뀌고 공시는 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줄이 이 글에서 가장 실무적인 문장입니다. 측정 기준일을 뒤로 옮겨 유동 재분류를 피하더라도, “결산일 기준으로 쟀다면 위반이었다”는 사실 자체를 주석에 적어야 할 수 있습니다. 숫자는 협상해서 지켰는데 문장은 그대로 남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투자 실사와 상장 예비심사에서 이 주석은 재무상태표의 분류 못지않게 읽힙니다.
유동으로 넘어간 다음에 부채비율은 그대로입니다
재분류가 확정되면 무엇이 실제로 나빠지는지 정리할 차례인데, 여기에 흔한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유동부채가 늘면 부채비율이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올라가지 않습니다. 재분류는 부채 안에서 줄을 바꿔 앉히는 일이고 부채총계도 자본총계도 1원 움직이지 않습니다. 부채비율을 부채총계 ÷ 자본총계로 계산하는 한 재분류 전후가 정확히 같습니다.
두 가지 단서는 붙습니다. 하나는 약정서가 ‘부채비율’을 자체 정의로 두는 경우입니다 — 후순위차입금이나 전환사채를 자본으로 간주하거나, 차입금의존도나 순차입금 대비 EBITDA를 쓰는 약정이라면 계산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정의 조항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재분류를 부른 사건이 같은 결산에서 자본을 함께 줄이는 경우입니다. 순유동부채 상태가 이연법인세자산의 실현가능성을 부정하는 근거로 쓰이거나 개발비 손상으로 이어지면 자본총계가 줄어 부채비율이 오릅니다. 다만 그것은 재분류의 효과가 아니라 나란히 일어나는 별개의 사건입니다.
가정 예시로 놓아 보겠습니다. 12월 결산 제조 스타트업이 양산 라인 신설을 위해 시설자금 20억을 3년 만기로 빌렸고, 결산일 현재 잔여 만기는 2년입니다. 여신약정서에는 결산일 기준 부채비율 200% 이하 유지 조항이 있습니다. 결산 결과는 자산총계 60억(그중 유동자산 15억), 부채총계 42억, 자본총계 18억 — 부채비율 233%로 약정 위반입니다.
- 재분류 전: 유동자산 15억 / 유동부채 8억 · 비유동부채 34억
- 재분류 후: 유동자산 15억 / 유동부채 28억 · 비유동부채 14억
- 부채비율 233% → 233% (변동 없음)
- 유동비율 188% → 54%
- 순운전자본 +7억 → △13억
부채비율이 그대로라는 점은 실무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자본총계와 부채총계가 움직이지 않으므로, 자본잠식 여부나 부채비율을 요건으로 두는 심사 — 정책자금·지원사업 공고, 모기업이나 다른 금융기관의 여신심사 — 에서는 이 재분류만으로 새로 문턱에 걸리지 않습니다. 다만 배제 요건의 문언과 수치는 사업별·기관별로 다르므로 해당 연도 공고문과 심사기준을 직접 봐야 합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집니다. 첫째는 연쇄 저촉입니다. 여신약정서에 유동비율이나 순운전자본 유지 조항이 함께 들어가 있으면, 부채비율 위반으로 시작된 재분류가 유동비율을 188%에서 54%로 끌어내리면서 손대지 않은 다른 조항까지 새로 위반시킵니다. 다른 금융기관 차입에 교차 채무불이행 조항이 걸려 있다면 위반이 계약을 건너 번질 수도 있습니다. 표준으로 들어가는 조항은 아니므로 실제 약정서를 확인해야 합니다.
둘째는 계속기업입니다.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초과하는 상태, 즉 순유동부채 상태는 감사인이 계속기업 존속능력에 유의적 의문을 초래할 수 있는 사건이나 상황의 예로 드는 항목입니다. 회계감사기준서 570 문단 A3의 ‘재무적 사항’ 목록 맨 앞이 “순부채 또는 순유동부채 상태”이고, 같은 목록에 “차입약정 조건의 준수 불능”과 “주요 재무비율의 악화”도 나란히 있습니다. 약정 위반 하나가 이 목록의 세 항목을 동시에 켜는 셈입니다. 여기에 K-IFRS 제1001호 문단 25가 얹힙니다 —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능력에 유의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사건이나 상황과 관련된 중요한 불확실성을 알게 된 경우, 경영진은 그러한 불확실성을 공시하여야 한다.”
다만 순유동부채 상태가 곧 결론은 아닙니다. 감사인은 완화 요인을 함께 봅니다 — 미사용 여신한도, 주주·모회사의 자금지원 의향, 그리고 은행이 상환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확인해 준 그 문서입니다. 앞에서 분류를 못 바꾼다고 했던 1월자 확인서가 여기서는 가장 직접적인 완화 증거로 쓰입니다. 분류에서 진 문서가 계속기업 평가에서는 이기는 셈입니다. 그러니 결산일을 놓쳤더라도 확인서는 받아 두는 편이 맞습니다 — 재무상태표를 고치려는 게 아니라 주석과 감사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입니다.
셋째는 다음 라운드입니다. 투자자 실사에서 순운전자본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재무제표는 “회사가 12개월 안에 28억을 결제해야 할 수도 있다”로 읽힙니다. 실제 은행이 상환을 요구할 생각이 없더라도, 그 의사는 재무제표에 없고 주석의 문장에만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상태는 밸류에이션 논의보다 브릿지 라운드의 규모와 자금 사용처 조항에 먼저 반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차입금이 재무비율을 통해 자본조달 조건을 흔드는 구조는 [[리스-사용권자산-부채비율]]에서 사용권자산 쪽 사례로, [[과소자본세제-국외지배주주]]에서 주주 대여금 쪽 사례로 다뤘습니다.
결산일 전에 확인할 다섯 줄, 그리고 놓쳤을 때의 한 줄
① 지금 걸려 있는 차입약정의 재무 조항과 그 측정 기준일을 전부 뽑아 놓습니다. 여신약정서 본문이 아니라 부속 약정서나 특약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채비율·유동비율·자기자본·순운전자본 중 어느 것을, 언제 기준으로 재는지가 이 목록의 전부입니다.
② 그 기준일 재무상태를 미리 가결산으로 계산해 봅니다. 12월 31일 기준 약정이라면 위반 여부는 12월 31일에 이미 확정되고, 그 뒤에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실무의 마지노선은 결산일이지 결산 완료일이 아닙니다.
③ 위반이 예상되면 결산일 이전 날짜로 은행 확인서를 받습니다. 유예기간은 결산일로부터 12개월을 넘겨야 하고(일반기업회계기준은 1년 초과), 기산점이 확인서 날짜가 아니라 결산일이며, 기한이익 상실 선언권을 유보하는 문구가 없어야 합니다(문단 75 / 2.27).
④ 재분류를 감수하기로 했다면 연쇄 저촉을 먼저 계산합니다. 유동비율·순운전자본 조항, 그리고 다른 금융기관 약정의 교차 채무불이행 조항까지 훑어야 실제 파급 범위가 나옵니다. 약정서가 ‘부채비율’을 자체 정의로 두고 있는지도 이때 함께 봅니다.
⑤ 측정 기준일을 결산일 뒤로 옮기는 협상을 했다면, 주석에 무엇을 쓰게 되는지를 미리 문장으로 적어 봅니다(문단 76ZA / 2.28의2). 재무상태표에서 사라진 위반이 주석에서 되살아나는 자리이고, 실사와 심사가 읽는 것도 그쪽입니다.
⑥ 결산일을 이미 놓쳤더라도 확인서는 받아 둡니다. 분류는 못 바꾸지만 계속기업 평가에서는 가장 직접적인 완화 증거가 됩니다.
차입약정 위반은 은행과의 문제로 시작해서 재무제표의 문제로 끝납니다. 은행이 봐주기로 한 사실은 협상으로 만들 수 있지만, 그 합의가 결산일 전에 존재했는지는 만들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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