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시트에 이런 조항이 들어옵니다. “2029년까지 상장하지 못하면 투자자는 보유 주식 전부를 투자원금에 연 8% 복리를 더한 금액으로 매수해 줄 것을 회사에 청구할 수 있다.” 창업자는 대개 이걸 일어나지 않을 조건으로 읽고 서명합니다. 회계는 서명한 날부터 다르게 읽습니다 — 투자받은 100억원이 자본이 아니라 부채로 앉습니다.
💡 한 줄 요약 — “상장 못 하면 되사준다”는 조항은 조건이 성취될 때 발동하는 약속이 아니라, 계약서에 들어간 날 이미 재무제표를 바꾸는 조항입니다. K-IFRS 제1032호는 회사가 자기 주식을 매입할 의무가 생기는 계약에 대해 상환금액의 현재가치만큼 금융부채를 인식하게 하고, 그 의무가 투자자의 권리행사에 달려 있어도 결론은 같습니다. 더 성가신 쪽은 상법입니다 — 의무자를 회사로 적어 넣으면 제341조가 걸리고, 결손금이 쌓인 스타트업에는 그 약속을 이행할 법적 재원 자체가 없습니다.
📋 목차
‘되사준다’는 한 줄이 자본을 부채로 옮기는 자리
기준서의 판단 기준은 계약의 이름이 아니라 현금을 내주는 것을 회사가 회피할 수 있느냐다.
K-IFRS 제1032호 문단 23은 기업이 현금으로 자기지분상품을 매입할 의무가 포함된 계약에 대해 상환금액의 현재가치만큼 금융부채가 생긴다고 정하고, 계약 자체가 지분상품인 경우에도 그러하다고 못 박는다. 한 줄이 더 붙는다 — 그 의무가 상대방의 권리행사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에도 금융부채가 생긴다. 예로 든 것이 정확히 이 조항, 확정 금액으로 회사에 주식을 매도할 권리를 준 풋옵션이다.
“행사할지 안 할지 모르지 않느냐”는 반론은 여기서 닫힌다. 행사 여부가 투자자 손에 있다는 사실이 곧 회사에 회피할 권리가 없다는 뜻이다.
조건이 IPO 성공 여부에 걸려 있으면 문단 25가 겹쳐 온다. 발행자와 보유자 모두가 통제할 수 없는 사건의 결과에 따라 현금으로 결제되는 금융상품은 발행자의 금융부채다. 예외는 셋뿐이고, 그중 마지막 문이 특히 단단히 닫혀 있다. 문단 16A의 풋가능 금융상품 예외는 그 상품이 그 밖의 모든 종류의 금융상품보다 후순위인 종류에 포함될 것을 요구하는데, 우선주는 정의상 보통주보다 앞선다.
숫자로 보면 이렇다. 5년 뒤 행사가는 100억원에 연 8% 복리를 얹은 약 147억원, 이를 8%로 할인한 현재가치 100억원이 최초 인식액이다. 받은 돈이 그대로 부채가 된다. 부채 30억원·자본 20억원이던 회사가 100억원을 유치하면 자본 120억원이 되어야 하는데, 그 100억원이 넘어가 부채 130억원 대 자본 20억원이 된다. 계획했던 부채비율 25%가 650%로 나온다.
이론적 위험이 아니다. 금융감독원은 2025년 재무제표 중점심사 회계이슈 네 가지 중 첫 번째로 투자자 약정 회계처리를 예고하며, 우선주에 조기상환청구권을 붙이거나 상장 실패 시 자금회수 기회를 주는 약정을 지목했다. 심사는 2026년 중이다.
회사가 되사주나, 대주주가 되사주나
기준서가 부채를 만드는 근거는 회사에 계약상 의무가 있다는 사실 하나다. 그러니 그 의무를 누구 이름으로 적었느냐에서 재무제표가 갈린다.
의무자가 대주주 개인이면 회사 재무제표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회사에 현금을 인도할 계약상 의무가 없어서다. 창업자가 개인 돈으로 주식을 사 오는 거래일 뿐이고, 회사는 주주명부만 바뀐다.
같은 경제적 약속인데, 계약서에 적힌 의무자 이름 하나로 부채 100억원이 생기기도 하고 안 생기기도 합니다. 텀시트에서 협상할 대상은 매수가격이 아니라 의무자입니다.
문제는 실제 계약서가 대개 셋째 유형이라는 점이다. “회사 및 이해관계인은 연대하여 매수한다”는 문구가 표준처럼 들어가 있다. 연대하면 회사도 의무자다. 투자자가 대주주에게 먼저 청구하기로 되어 있든 아니든, 회사가 종국적으로 현금 인도를 회피하지 못하면 부채는 회사 장부에 생긴다.
대주주 단독으로 적었다고 끝나지도 않는다. 개인이 돈이 없어 회사 자금으로 이행하면 법인이 대표자의 개인 채무를 대신 변제한 것이 된다. 국세청 판례 데이터베이스에는 대표자를 대신해 자기주식을 취득하고 대금을 회수하지 않은 것을 부당행위로 본 사건이 남아 있다(대법원 2015두53206). 대주주 이름을 적었다면 그에게 실제 이행 능력이 있어야 한다.
회사가 되사주기로 했다면, 회계보다 상법이 먼저 막는다
여기가 회계 explainer들이 멈추는 지점이고, CFO가 실제로 사고를 당하는 지점이다.
회사가 자기 주식을 사려면 상법 제341조를 통과해야 한다. 제1항 단서는 취득가액 총액이 직전 결산기 순자산액에서 제462조 제1항 각 호(자본금, 적립된 자본준비금·이익준비금, 그 결산기에 적립할 이익준비금, 미실현이익)를 뺀 금액을 넘지 못하게 한다. 배당가능이익 한도다.
투자를 많이 받은 적자 회사에서 이 계산은 거의 늘 같은 결과로 끝난다. 투자금은 자본금과 주식발행초과금으로 들어오는데 주식발행초과금은 자본준비금이라 통째로 공제 대상이고, 결손금은 순자산을 깎기 때문이다.
앞의 회사로 계산해 보자. 자본금 10억원, 주식발행초과금 190억원, 결손금 80억원이면 순자산액 120억원이다(풋옵션 부채를 재분류하기 전 기준이다. 재분류 후 숫자로 계산해도 순자산액과 자본준비금이 같은 금액만큼 줄어 결과는 같다). 여기서 10억원과 190억원을 빼면 마이너스 80억원 — 취득 한도는 0원인데 계약은 147억원을 요구한다.
레버가 아주 없지는 않다. 상법 제461조의2는 적립된 준비금 총액이 자본금의 1.5배를 넘으면 주주총회 결의로 초과분을 감액할 수 있게 한다. 다만 감액해도 배당가능이익은 순자산 120억원 안에서만 만들어진다. 147억원은 어떤 경로로도 나오지 않는다.
제341조의2의 예외 — 합병·영업 전부 양수, 회사의 권리 실행, 단주 처리,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 도 닿지 않는다. 네 번째를 계약상 풋옵션으로 읽고 싶어지지만, 여기서 말하는 주식매수청구권은 합병·영업양도 등에 반대하는 주주에게 상법이 따로 정해 준 법정 권리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제341조 제3항은 결산기 순자산액이 제462조 제1항 각 호의 합계액에 미달할 우려가 있으면 취득 자체를 금지하고, 제4항은 그럼에도 취득하면 이사가 회사에 연대하여 미달액을 배상하게 한다. 배당가능이익이 마이너스인 줄 알면서 지급했다면 면책 사유를 쓰기 어렵다. 계약을 지키려던 대표이사가 개인 배상책임을 지는 구조다.
세무는 그다음이다. 상법 요건을 못 갖춘 취득이 무효로 판단되면 지급한 매매대금은 주주에게 나간 돈이 되고, 과세관청은 이를 업무무관 가지급금으로 본다. 인정이자가 익금에 산입되고, 법인세법 제28조 제1항 제4호 나목에 따라 그에 상당하는 차입금 이자가 손금에서 빠진다. 결론은 그 취득이 상법상 무효였는지에 따라 갈린다. 무효로 본 사건에서는 매매대금을 업무무관 가지급금으로 보아 인정이자를 익금산입한 과세가 유지됐고(서울고등법원 2014누53591), 무효가 아니라고 본 사건에서는 가지급금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서울고등법원 2021누73098).
자회사 투자자에게 준 풋은 연결에서 비지배지분을 부채로 바꾼다
사업부를 자회사로 떼어 별도 투자를 받는 구조에서는 소수지분 투자자에게 “3년 내 자회사가 상장하지 못하면 모회사가 되사준다”는 풋을 주는 경우가 흔하다.
모회사 별도재무제표에서는 자기 주식을 매입하는 계약이 아니다. 자회사 주식이니까. 연결재무제표는 다르다. 연결실체 관점에서 그 지분은 이미 연결자본에 비지배지분으로 들어와 있고, 현금으로 사 올 의무가 있으니 문단 23이 그대로 걸린다.
부채비율만 나빠지는 게 아니다. 행사가격이 행사 시점의 공정가치에 연동되면 자회사가 잘될수록 되사줄 금액이 커진다. [[rcps-부채-역설|기업가치가 오를수록 손실이 커지는 RCPS의 역설]]과 같은 구조다. [[연결재무제표-작성대상-지배력|지배력 판정]] 단계에서 함께 읽어야 한다.
반대편이 먼저 묻는 것
실사팀과 감사인이 주주간계약을 펼쳐 처음 찾는 것은 매수가격 산식이 아니다. 의무자가 누구인가, 회사가 연대하는가다. 그다음이 셋이다. 자본으로 분류한 판단근거 문서가 있는가. 이행할 배당가능이익이 있는가. 같은 조항이 다른 라운드에도 있는가.
셋째가 특히 무섭다. 라운드마다 다른 로펌이 붙어 문구가 조금씩 다르게 누적되는데, 최혜대우 조항이 걸려 있으면 나중 라운드의 유리한 매수 조건이 앞 라운드 투자자에게도 옮겨붙는다. 계약서 전부를 같이 읽어야 부채 규모가 나온다.
답은 결산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safe-전환사채-자본부채|SAFE가 미래 지분인데도 부채로 잡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조항의 회계 결과는 텀시트에 문장을 넣던 날 확정됐다. 그날 쥘 레버는 셋이다. 의무자를 대주주 개인으로 한정하기, 연대 문구 빼기, 행사 조건을 회사가 통제할 수 있는 사건으로 좁히기. 셋 다 매수가격을 한 푼도 깎지 않는 협상이라 투자자가 받아들일 여지가 가격보다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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