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을 장부에만 쌓아둔 회사, 상장 준비하면 그 부채가 소급으로 다시 계산됩니다 — 확정급여형(DB)은 회계로 커지고, 세금은 ‘사외에 적립한 현금’만 빼줍니다

실사 자료를 받은 투자자나 상장주관사가 재무제표에서 ‘퇴직급여충당부채’ 한 줄을 보면, 금액보다 먼저 묻는 게 있다. “이 회사 퇴직연금은 DB입니까 DC입니까. 사외적립은 얼마나 돼 있습니까.” 같은 퇴직금인데 이 질문 하나로 회계에 잡히는 부채의 크기도, 세금에서 빼주는 금액도 갈리기 때문이다.

💡 한 줄 요약 — 퇴직급여는 ‘제도를 무엇으로 골랐는가’가 회계 부채의 유무와 세무 손금의 크기를 동시에 가른다. 확정급여형(DB)은 미래 급여를 현재가치로 부채에 쌓지만, 세무는 사내에 쌓은 충당금은 손금으로 인정하지 않고 ‘사외에 실제로 적립한 현금’만 빼준다. 그리고 비상장 시절 단순하게 잡아둔 이 부채는 상장 준비 K-IFRS 전환에서 과거로 거슬러 다시 계산돼 자본을 깎는다.


제도를 무엇으로 골랐는가가 부채의 유무를 가른다

퇴직연금은 크게 둘이다. 확정기여형(DC)은 회사가 낼 부담금의 수준이 미리 정해져 있고(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2 9호), 매달 정해진 금액을 근로자 계좌에 넣으면 회사의 의무는 거기서 끝난다. 회계로는 그해 부담금이 비용으로 잡힐 뿐 재무상태표에 부채가 남지 않는다. 운용 성과가 좋든 나쁘든 그건 근로자의 몫이다.

확정급여형(DB)은 반대다. 근로자가 받을 급여의 수준이 미리 정해져 있고(§2 8호), 그 미래 급여를 지급할 책임과 적립금을 굴리는 위험을 회사가 진다. 그래서 회계는 ‘앞으로 줘야 할 퇴직급여의 현재가치'(확정급여채무)에서 ‘사외에 쌓아둔 적립금'(사외적립자산)을 뺀 순확정급여부채를 재무상태표에 세운다.

퇴직연금에 아직 가입하지 않고 사내에 충당부채만 잡아둔 회사는 DB와 같은 부채를 지면서 사외적립은 0인 상태다. 실무에서 자주 보이는 건, 초기 스타트업이 제도를 깊이 따지지 않고 설정해두거나 퇴직연금 가입 자체를 미룬 채 장부에만 충당금을 쌓는 경우다. 반대편이 DB냐 DC냐, 사외적립이 얼마냐를 먼저 묻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 답이 뒤에 이어지는 부채와 세금을 전부 결정한다.

확정기여형(DC)과 확정급여형(DB)의 회계·세무 처리를 좌우로 비교한 도식
같은 퇴직금이라도 제도가 DC냐 DB냐에 따라 재무상태표에 부채가 남는지가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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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로는 부채가 쌓이는데, 세금은 ‘사외에 적립한 현금’만 빼준다

DB 확정급여채무는 예측단위적립방식으로 계산한다. 지금 당장 나갈 퇴직금이 아니라, 앞으로 임금이 오르고 근속이 쌓였을 때 지급할 급여를 가정(임금상승률·이직률·할인율)으로 추정해 현재가치로 당겨온다. 여기서 하나 짚을 게 있다. 매년 새로 쌓이는 근무원가와 순이자는 손익계산서를 지나가지만, 가정을 바꿔 다시 계산한 재측정손익(보험수리적손익)은 순이익을 건너뛰고 곧장 자본(기타포괄손익)을 때린다. 순이익만 들여다보는 사람 눈에는 안 보이는 자본 훼손이 여기서 생긴다.

세무는 정반대로 인색하다. 사내 장부에 쌓은 퇴직급여충당금은 2016년 이후 개시하는 사업연도부터 손금산입 한도가 0이다(법인세법 시행령 §60②7호). 장부에 비용으로 아무리 잡아도 세금에서 빼주는 금액은 0이라는 뜻이다.

세무상 손금이 되는 건 ‘사외로 실제 빠져나간 현금’뿐이다. 확정기여형(DC) 부담금은 전액 손금으로 인정된다(시행령 §44의2③). 다만 임원 몫은 별도로 퇴직급여 손금한도(§44④)에 걸린다. 확정급여형(DB)은 퇴직연금에 사외적립한 부담금이 한도 안에서 손금이 된다(§44의2④). 한도는 세법이 정한 두 기준금액 중 큰 금액에서 퇴직급여충당금을 빼고, 직전 사업연도까지 이미 낸 부담금을 다시 차감해 계산한다. 사내 충당금 손금한도가 0이라 실무에서 뺄 세무상 충당금은 대개 없다. 결국 적립하지 않은 부채는 세무상 비용이 아니라 이연법인세자산으로 미뤄질 뿐, 실제로 적립하거나 지급할 때까지 세금은 깎이지 않는다. ‘비용으로 잡았다’와 ‘손금이 됐다’는 다른 말이다.

예를 들어 확정급여채무가 11억으로 계산된 DB형 회사가 퇴직연금에 6억을 사외적립했다면, 재무상태표에는 순확정급여부채 5억이 남고 세무상 손금이 되는 건 사외적립한 6억뿐이다. 나머지 5억은 장부에 부채로 남되 세금에서는 빠지지 않는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을 게 있다. 손금 한도를 재는 자는 K-IFRS 확정급여채무 11억이 아니라 세법이 정한 추계액이다. 회계가 임금상승률을 반영해 키운 부채는 세법 한도를 늘려주지 않는다.

스타트업 특유의 함정은 가정 쪽에 있다. 근속이 짧아 당장의 추계액은 작아 보여도, 높은 임금상승률을 가정하면 미래 급여의 현재가치가 불어난다. 젊고 빠르게 크는 조직일수록 이 가정이 부채를 밀어올리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다만 방향이 늘 한쪽인 건 아니다. 이직률을 높게 잡거나 할인율이 오르면 확정급여채무는 반대로 줄어든다. 어느 쪽으로 벌어지는지는 회사의 가정 조합에서 갈리므로, 전환 전에 계리 가정부터 확인해야 한다.

확정급여채무 11억 중 사외적립 6억만 세무 손금으로 인정되고 미적립 5억은 손금이 안 되는 구조를 나타낸 분할 막대 도식
회계상 부채 11억 가운데 세금에서 빠지는 건 사외에 적립한 6억뿐이다.

퇴직급여는 ‘비용으로 잡았다’가 아니라 ‘사외에 적립했다’가 세금을 가른다.


비상장 때 미뤄둔 재측정이, 상장 K-IFRS 전환에서 과거로 거슬러 드러난다

비상장 시절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일반기업회계기준(K-GAAP)을 쓴다. 여기서 퇴직급여충당부채는 ‘보고기간말에 전 직원이 한꺼번에 퇴직한다면 줘야 할 퇴직금'(일시퇴직기준)으로 단순하게 잡는다. 보험수리적 가정도, 재측정도 없다. 계산이 가볍다.

상장을 준비하면 K-IFRS로 전환해야 한다. 해당 사업연도 또는 다음 사업연도 중에 주권상장법인이 되려는 회사가 적용 대상이다(외부감사법 시행령 §6①2호, 코넥스 상장 예정은 제외). 퇴직급여는 일시퇴직기준에서 예측단위적립방식으로 갈아탄다. 그런데 K-IFRS 최초채택은 전환하는 해부터가 아니라 전환일로 거슬러 개시재무상태표를 다시 쓴다. 임금상승률을 반영한 확정급여채무가 일시퇴직 추계액과 벌어진 만큼이, 당기손익이 아니라 전환일 자본(이익잉여금)에 곧장 반영된다. 비상장 때 일시퇴직기준으로 8억이던 충당부채가 K-IFRS 확정급여채무 11억으로 다시 계산되면, 그 차이 3억은 전환일 자본에서 조용히 빠진다.

그래서 상장 준비 회사의 자본은 두 번 깎인다. 스톡옵션·개발비·RCPS가 소급으로 다시 계산되는 자리(7월 8일 ‘K-IFRS 전환’ 글)에서 한 번, 퇴직급여가 재측정되는 자리에서 또 한 번. 초도감사에서 감사인이 관찰하지 못한 기초잔액을 거꾸로 추적하며 퇴직급여충당금을 다시 계산하는 항목(7월 14일 ‘초도감사’ 글)도 바로 이것이다.

DB형은 여기에 사외적립 의무가 겹친다. 확정급여형은 기준책임준비금에 최소적립비율을 곱한 최소적립금 이상을 사외에 적립해야 하는데(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16①), 이 비율은 2022년 1월 1일부터 100%다(같은 법 시행규칙 §4의2 3호). 적립금이 최소적립금의 95%에 못 미치면 부족분 비율의 3분의 1 이상을 직전 사업연도 종료 후 1년 안에 메워야 하고(같은 법 시행령 §7), 이를 해소하지 않으면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붙는다(같은 법 §48①2호). 회계로 드러난 미적립 채무가 곧 실제로 채워 넣어야 할 현금이라는 뜻이다.

반대편(투자자·상장주관사·감사인)의 질문이 “제도가 DB냐 DC냐”에서 끝나지 않고 “전환하면 자본이 얼마 줄고, 사외에 적립되지 않은 채무는 얼마인가”로 이어지는 이유가 이것이다. 퇴직급여는 재무제표에서 한 줄이지만, 그 한 줄 뒤에는 제도 선택·세무 손금·상장 전환 소급이 한꺼번에 매달려 있다.

K-GAAP 일시퇴직기준 8억이 K-IFRS 예측단위적립방식 11억으로 소급 재계산되어 자본이 3억 감소하는 구조를 나타낸 좌우 비교 도식
상장 준비 K-IFRS 전환은 퇴직급여를 전환일로 거슬러 다시 계산하고, 벌어진 차이는 당기손익이 아니라 자본에서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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