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비 12억을 자산으로 올려 둔 회사가 감사인에게 받은 첫 질문은 “왜 자산이냐”가 아니었습니다. “왜 아직 상각을 시작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그러면 그 12억의 회수가능액은 얼마냐”였습니다. 자본화 요건을 통과한 순간 질문이 바뀐다는 사실을 모르고 결산에 들어가는 회사가 많습니다.
💡 한 줄 요약 — 무형자산의 상각은 개발이 끝난 날이 아니라 자산을 사용할 수 있는 때부터 시작합니다(K-IFRS 제1038호 문단 97, 일반기업회계기준 11.26). 그리고 아직 사용할 수 없는 무형자산은 손상징후가 있든 없든 매년 회수가능액을 추정해야 합니다(K-IFRS 제1036호 문단 10, 일반기업회계기준 20.5). 상각을 미루는 선택은 비용을 없앤 것이 아니라, 매년 조금씩 나가는 상각비를 한 번에 전액이 걸리는 손상 이벤트로 바꾼 것입니다. 결정타는 세무입니다 — 그때 계상한 손상차손은 감가상각비로 의제되는데(법인세법 시행령 제31조 제8항), 개발비의 상각범위액은 “관련 제품의 판매 또는 사용이 가능한 시점”부터 계산되므로(같은 영 제26조 제1항 제6호) 그 시점 전이라면 손금 한도가 0입니다.
📋 목차
상각은 ‘완성’이 아니라 ‘사용할 수 있는 때’부터 시작합니다
개발비를 자산으로 올린 회사에서 결산 때마다 반복되는 계산이 있습니다. 상각을 시작하면 영업이익이 그만큼 깎이니, 제품이 정식 출시될 때까지 미뤄 두자는 것입니다. 기준서가 정한 개시 시점은 그 계산과 다릅니다. K-IFRS 제1038호 문단 97의 문언입니다.
상각은 자산을 사용할 수 있는 때부터 시작한다. 즉 자산이 경영자가 의도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장소와 상태에 이르렀을 때부터 시작한다.
“사용할 수 있는 때”이지 “사용한 때”가 아닙니다. 개발이 끝나 그 기술을 의도한 방식으로 돌릴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면, 아직 첫 고객이 붙지 않았어도 상각은 그 시점부터입니다. 매출 발생 시점, 정식 출시일, 특허 등록일 — 실무에서 개시 기준으로 자주 쓰이는 이 날짜들은 기준서의 문언이 아닙니다.
일반기업회계기준을 쓰는 회사도 같습니다. 문단 11.26은 상각기간이 독점적·배타적인 권리를 부여하고 있는 관계 법령이나 계약에 정해진 경우를 제외하고는 20년을 초과할 수 없다고 정한 뒤, “상각은 자산이 사용가능한 때부터 시작한다”고 못박습니다. 외부감사를 아직 안 받는 회사라고 해서 다른 규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상각 개시 시점은 감사에서 회사가 혼자 정하는 숫자가 아니라 감사인과 다투게 되는 판단이 됩니다. 개발 완료 보고서, 내부 시험 통과 기록, 파일럿 배포 이력, 사업부 인수인계 문서 — 회사가 “아직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할수록 그 주장을 뒷받침할 문서가 있어야 하고, 동시에 IR 자료에 “기술 개발 완료”라고 쓴 문장과 충돌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본화 자체의 논리는 [[개발비-자본화-함정]]에서 다뤘습니다. 이 글은 그다음 칸의 이야기입니다.
상각하지 않는 무형자산은 매년 손상검사 대상입니다
여기가 미룬 대가가 청구되는 자리입니다. K-IFRS 제1036호 문단 10입니다.
다음의 경우에는 자산손상 징후가 있는지에 관계없이 회수가능액과 장부금액을 비교하여 손상검사를 한다. (1) 내용연수가 비한정인 무형자산이나 아직 사용할 수 없는 무형자산은 일 년에 한 번은 손상검사를 한다.
일반기업회계기준은 한 발 더 나갑니다. 문단 20.4가 “매 보고기간말마다 자산손상을 시사하는 징후가 있는지를 검토한다”고 원칙을 두는데, 문단 20.5는 그 원칙 밖에 별도로 서 있습니다 — “아직 사용가능하지 않은 무형자산은 최소한 매 보고기간말에 회수가능액을 반드시 추정하여야 한다.” 실무지침 실20.1이 그 이유를 한 줄로 적어 두었습니다. 무형자산이 취득원가를 회수할 만큼의 미래경제적효익을 창출할지는 사용가능할 때까지는 확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언의 무게가 다릅니다. K-IFRS는 “일 년에 한 번”이라 회계연도 중 아무 때나(같은 시기를 유지한다면) 가능하지만, 일반기업회계기준은 보고기간말을 기준으로 잡습니다. 상장 준비 단계에서 반기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회사라면 반기말도 보고기간말입니다. 다만 중간기간에까지 연차와 같은 강도를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 중간재무제표에는 연차와 동일한 회계정책을 적용하되(일반기업회계기준 29.8), 손상검사는 “직전 회계연도 이후 손상을 인식해야 하는 중대한 사유가 발생하였는지를 개략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같은 기준 실29.12). 반기에 회수가능액 산정을 통째로 반복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반기검토-소극적확신]] 참조). 그리고 K-IFRS를 적용하더라도 예외가 하나 붙습니다 — 그 회계연도 중에 처음 인식한 무형자산은 해당 회계연도 말 전에 손상검사를 해야 합니다. 올해 처음 자본화한 개발비는 “내년 정기 검사 때 보겠다”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교환 구조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상각을 시작하면 정해진 비율로 나뉜 비용이 매년 손익에 찍히고, 그 대신 손상검사는 징후가 있을 때만 합니다. 상각을 미루면 매년 찍히는 비용은 없지만, 징후와 무관하게 매년 회수가능액을 입증할 의무가 생깁니다. 비용을 없앤 게 아니라 비용의 형태를 바꾼 것입니다 — 예측 가능한 분할에서, 한 번에 전액이 걸리는 이벤트로.
입증 부담에는 역설이 하나 더 있습니다. 회수가능액은 순공정가치와 사용가치 중 큰 금액인데, 아직 사용할 수 없는 개발비는 두 축이 모두 얇습니다. 거래되는 시장이 없어 순공정가치를 잡기 어렵고, 사용가치는 그 자산이 앞으로 만들 현금흐름을 할인해 구해야 하는데 그 현금흐름은 아직 하나도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근거는 경영진이 승인한 사업계획이 됩니다. 투자자에게 보여준 숫자와 감사조서에 들어갈 숫자가 같은 방에 놓이는 순간입니다. 상각을 미룬 기간이 길수록 장부금액은 상각누계액 없이 취득원가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입증에 실패했을 때 터지는 금액도 최대치입니다.
상각을 미루는 것은 비용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매년 사업계획으로 자산가치를 입증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손상 축의 다른 경로인 사업결합 영업권·무형자산의 손상 구조는 [[ppa-영업권-무형자산]]에서 다뤘습니다. 자체 개발한 개발비는 배분받은 영업권과 달리 현금창출단위에 숨을 곳이 없어, 자산 단위로 회수가능액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제를 접으면 회계와 세무가 어긋납니다
파이프라인을 정리하면서 과제 하나를 접는다고 가정해 봅니다. 회계는 단순합니다. 그 개발비의 회수가능액이 0이면 장부금액 12억이 통째로 당기 손상차손입니다. 문제는 세무입니다.
법인세법은 자산의 임의 감액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법 제42조 제1항). 예외로 장부가액 감액을 허용하는 제3항은 ① 파손·부패된 재고자산 ② 천재지변·화재 등으로 파손·멸실된 유형자산 ③ 발행법인이 부도·회생·파산 등에 이른 주식만 열거합니다. 무형자산인 개발비는 이 목록에 없습니다.
남은 통로는 시행령 제31조 제8항 하나입니다.
감가상각자산이 진부화, 물리적 손상 등에 따라 시장가치가 급격히 하락하여 법인이 기업회계기준에 따라 손상차손을 계상한 경우(법 제42조제3항제2호에 해당하는 경우는 제외한다)에는 해당 금액을 감가상각비로서 손비로 계상한 것으로 보아 법 제23조제1항을 적용한다.
손상차손을 손금으로 인정한다는 조항이 아닙니다. 감가상각비로 취급하겠다는 조항입니다. 그러면 법 제23조 제1항이 걸리고, 손금은 상각범위액 범위에서만 인정되며 초과분은 손금불산입입니다.
그다음 조문이 이 글의 핵심입니다. 개발비의 상각범위액은 시행령 제26조 제1항 제6호가 이렇게 정합니다 — “관련 제품의 판매 또는 사용이 가능한 시점부터 20년의 범위에서 연단위로 신고한 내용연수에 따라 매 사업연도별 경과월수에 비례하여 상각하는 방법.” 감가상각방법을 신고한 적이 없다면 제26조 제4항 제4호에 따라 같은 시점부터 5년 균등으로 고정됩니다.
두 조문을 나란히 놓으면 이렇게 됩니다. 아직 판매도 사용도 가능하지 않아 상각을 시작하지 않은 개발비는 상각범위액이 0입니다. 그 상태에서 손상차손 12억을 계상하면, 시행령 제31조 제8항이 그것을 감가상각비로 바꿔 놓아도 한도가 0이므로 전액이 손금불산입됩니다. 회계 손익은 12억이 빠졌는데 과세소득은 그대로입니다.
상각을 미룬 바로 그 사실이 세무상 손금 한도를 0으로 만드는 구조입니다.
아직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개발비가 감가상각자산에서 아예 빠지는 것도 아닙니다. 시행령 제24조 제1항 제2호 바목은 개발비를 “상업적인 생산 또는 사용 전에 재료ㆍ장치ㆍ제품ㆍ공정ㆍ시스템 또는 용역을 창출하거나 현저히 개선하기 위한 (…) 비용으로서 기업회계기준에 따른 개발비 요건을 갖춘 것”으로 정의해 무형자산 목록에 올려 둡니다. 세법도 개발비를 사용 전 단계의 지출로 전제하고 감가상각자산에 넣은 것이고, 제26조 제1항 제6호가 그 상각 개시 시점을 따로 정한 것 자체가 그 전에도 자산으로 존재함을 전제합니다. 빠져나갈 문이 아니라, 들어와 있는데 한도가 0인 문입니다.
그리고 애초에 시행령 제31조 제8항의 요건(“진부화, 물리적 손상 등에 따라 시장가치가 급격히 하락”)이 개발 실패로 인한 효익 상실에 그대로 맞아떨어지는지도 다툼의 여지가 있는데, 이 요건을 못 채우면 제42조 제1항 원칙으로 돌아가 어차피 손금이 아닙니다. 어느 경로로 가도 그해 세금은 줄지 않습니다.
손금불산입된 12억은 상각부인액으로 유보에 남습니다. 시행령 제32조 제1항은 그 후 사업연도에 손비로 계상한 감가상각비가 상각범위액에 미달하면 그 시인부족액을 한도로 손금에 산입한다고 정하고, 감가상각비를 아예 계상하지 않아도 상각범위액을 한도로 추인한다고 덧붙입니다. 문제는 그 상각범위액이 여전히 “판매 또는 사용이 가능한 시점”에 매여 있다는 점입니다. 과제를 접었으니 그 시점은 오지 않습니다. 같은 조 제5항이 상각부인액을 손금에 산입하는 계기로 규정한 것은 자산의 양도인데, 접은 과제의 개발비를 장부에서 털어내는 것은 양도가 아닙니다. 시행령 제31조 제7항 제1호의 폐기 특례도 대상이 ‘생산설비’라 무형자산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조문만 놓고 보면 그 유보를 털 계기가 마련돼 있지 않은 셈이고, 그래서 이 자리는 결산 때 유보를 어떻게 남기고 관리할지 미리 정해 두어야 하는 구간입니다.
한 가지는 반대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감가상각방법신고서를 낸 적이 없다면 세무상 상각은 5년 균등으로 고정되는데(시행령 제26조 제4항 제4호), 회계에서 그보다 긴 내용연수를 잡아 두었다면 세무 한도가 회계 비용보다 커서 시인부족액이 매년 생깁니다. 유보 추인이 그만큼 빨라지는 방향입니다. 신고서를 냈는지, 냈다면 몇 년으로 냈는지는 결산 전에 확인해 둘 사항입니다. 시행령 제26조 제3항은 그 신고 기한을 신설법인은 영업을 개시한 날, 그 밖의 법인은 해당 자산을 취득한 날이 속하는 사업연도의 법인세 과세표준 신고기한까지로 정하고, 기한을 넘긴 뒤에는 시행령 제27조 제1항이 열거한 사유(합병, 사업 인수·승계, 일정 요건의 외국인투자, 해외시장 경기변동, 회계정책 변경에 따른 결산상각방법 변경)에 해당해 관할세무서장의 승인을 받는 경로만 남습니다.
R&D 세액공제는 이 트랙과 분리해 두는 편이 낫습니다. 조세특례제한법 제10조 제1항은 공제액을 “해당 과세연도에 발생한” 연구·인력개발비를 기준으로 계산하도록 각 호에서 반복해 정합니다. 그 비용을 회계에서 비용으로 털었는지 자산으로 올렸는지는 계산식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뒤늦게 그 개발비를 손상했다고 해서 이미 받은 공제가 되돌아가는 구조도 아닙니다. 자세한 계산 구조는 [[연구개발비-세액공제]]에서 다뤘습니다.
그리고 방향이 반대인 사실 하나. 감가상각은 결산조정 사항입니다. 법 제23조 제1항은 “결산을 확정할 때 (…) 감가상각비를 손비로 계상한 경우에는”이라고 시작합니다. 회계에서 자산으로 올린 순간 세무도 자산이 됩니다 — 앞서 본 시행령 제24조 제1항 제2호 바목이 감가상각자산인 개발비를 “기업회계기준에 따른 개발비 요건을 갖춘 것”으로 정의하기 때문입니다. 자본화 결정은 회계 손익만 미룬 것이 아니라 세무상 손금 시점까지 함께 미룬 결정이었습니다.
결산 전에 확인할 다섯 줄
① 자본화한 개발비마다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시점”의 정의를 문서로 남겼는지 — 정식 출시일이나 첫 매출일이 아니라, 경영진이 의도한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른 날입니다.
② 상각을 시작하지 않은 개발비 잔액을 과제별로 뽑았는지 — 그 목록이 곧 매년 손상검사 대상입니다. 올해 처음 자본화한 과제는 올해 말 전에 한 번 봐야 합니다.
③ 회수가능액 산정에 쓸 현금흐름의 출처가 어디인지 — IR 자료의 숫자를 그대로 쓸 생각이면, 그 숫자가 감사조서에 남는다는 것까지 계산에 넣어야 합니다.
④ 감가상각방법신고서를 제출한 적이 있는지, 몇 년으로 신고했는지 — 안 냈다면 세무상 5년 균등이고, 신고 기한은 그 자산을 취득한 사업연도(신설법인은 영업을 개시한 사업연도)의 신고기한에 이미 닫혔습니다.
⑤ 과제 중단 결정이 언제 있었는지 — 손상 인식 시점은 결산일이 아니라 그 결정이 있었던 보고기간입니다. 이사회 의사록과 내부 보고 라인의 날짜가 먼저입니다.
상각을 시작하지 않은 개발비는 손익계산서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습니다. 재무상태표에는 매년 입증해야 할 금액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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